[인터뷰 제1공장]
극적인 아프간 탈출부터 진천 체류까지..
"기적과 믿음의 나라.. 한국은 제2의 고향"
- A씨 (아프간 특별기여자)
▶ 김어준 : 주 아프간 한국대사관 김일응 공사참사관이 카불을 급히 떠났다가 다시 카불로 돌아갔죠. 그때 한 아프간 특별기여자와 뜨거운 재회의 포옹을 나눴습니다. 다들 기억하실텐데, 그분은 지금 진천 인재개발원에서 생활하고 계십니다. 그분을 직접 만나 보겠습니다. 신변 보호를 위해서 성함을 비롯한 개인 정보는 밝히지 않겠습니다. 안녕하세요.
▷ :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를 초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김어준 : 우선 본인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아프가니스탄에 계실 때는 어떤 일을 하셨는지.
▷ : 저는 바그람 한국병원에서 의료 통역사로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일을 했습니다. 당시 한국 의사 선생님들과 또 간호사분들 모든 의료진들을 도와서 이러한 의료 서비스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데 제가 도움을 드린 바 있습니다.
▶ 김어준 : 이번에 어떤 분들과 함께 한국에 오신 겁니까?
▷ : 제가 이번에 6명의 가족과 함께 한국에 왔습니다. 저의 아내와 두 딸, 두 아들과 함께 들어왔는데요. 막내 아들은 지금 막 한 달이 됐습니다. 저는 막내 아들에게 한국 이름도 지어 주고 싶습니다.
▶ 김어준 : 한국 이름을 아직 안 지은 거죠?
▷ : 네, 아직 제가 한국 이름을 정하지는 못했는데 제가 한국인 동료들하고 지금 이야기를 하면서 어떠한 한국 이름이 제 막내 아들에게 잘 어울릴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 김어준 : 한국 사람이라고 다 이름을 잘 짓는 게 아니에요.
▷ : 제 지난 상사인 닥터 손이라는 선생님이 계신데 그 선생님께서 제 막내 아들의 이름을 지한이라고 우선은 지어 주셨습니다.
▶ 김어준 : 의사 선생님이라고 이름을 꼭 잘 지으란 법은 없거든요. 그러니까 확정하지 마시고 거기에 계시는 동안 여러 한국분들의 의견을 들어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지한이라는 이름이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김어준 : 자, 모든 생활 기반을 갑자기 두고 나고 자란 곳을 떠난다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거든요. 고민이 있었을 것 같은데, 갈등하고. 한국으로 오기로 결정한 계기가 있습니까?
▷ : 아무도 탈레반이 이렇게 빨리 카불을 점령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저도 또 저희 가족도 다들 너무 무서웠었고 또 저희 아이들은 울면서 그럼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과연 그들이 우리를 죽일 것인지, 이런 것들을 물어왔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아이들을 안아 주면서 눈물을 닦아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저희의 유일한 희망은 김일응 참사관님과 또 한국 대사관뿐이었습니다. 탈레반이 카불에 도착한 날 저희가 김 참사관님께 전화를 걸었었는데 당시 안전 상황 때문에 미군에 의해서 한국 대사관 모든 직원분들이 국제안보지원군 기지로 옮겨 갔다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또 실제로 한국 대사관에는 당시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저희는 정말 너무 실망했지만 당시에 저희는 계속해서 김 참사관님과 연락을 하던 중이었기 때문에 참사관님을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김 참사관님은 아주 친절하신 분이고 또 밤낮 없이 열과 성을 다해서 저희를 위해 최선을 다해 주신 그런 저희의 영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김 참사관님을 믿었고 결국 참사관님과 또 한국 정부의 도움으로 카불에서 탈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탈출했을 당시 저희는 저희의 집, 자동차, 은행에 있는 모든 잔고까지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그냥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돌아보면 다시 한번 저희에게 이렇게 지원을 해 주신 김 참사관님과 또 한국 정부에 정말 감사하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김어준 : 집이나 차나 은행도 정상 운영이 안 돼서 돈도 찾을 수 없었다고 제가 알고 있는데, 모든 재산을 사실상 다 놓고 온 거네요?
▷ : 맞습니다. 아이들 옷 몇 벌, 작은 가방 2개 그 정도만 저희가 들고 떠날 수 있었고요. 또 당시 저희가 집을 팔려고 하거나 차를 팔려고 해도 현금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팔 수도 없고 또 사려는 사람도 없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 김어준 : 한마디로 말하면 급하게 차, 집, 재산을 팔아서 현금화하려고 했는데 미래가 불확실하니까 그걸 사는 사람도 없었고 은행도 문을 닫아서 사실상 어떤 재산도 못 가져왔다는 이야기네요?
▷ : 네, 맞습니다. 제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집도 두 채가 있었고 제 자동차도 있었고 좋은 직장도 있었지만 이 모든 것들을 뒤로 하고 그냥 버리고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많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탈출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저희도 공항에 가기 바빴습니다.
▶ 김어준 : 이번에 이 미라클 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되돌아보면 버스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금 평가하고 있는데 버스 안에서의 상황은 어땠습니까? 위험한 순간들은 없었나요?
▷ : 저희 힘으로는 공항에 들어가기가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김일응 공사참사관님께서 버스를 제공해 주셔서 버스를 통해서 저희가 결국은 공항에 들어가는 것을 성공 하긴 했지만 그 과정은 또 쉽지가 않았습니다. 저희가 버스에 타 있는 동안에도 다른 수천 명의 사람들이 이 버스가 공항 안으로 들어가는 버스라는 걸 알고 나서 자기들도 버스에 타기 위해서 이 버스를 공격하려고 했기 때문에 저희가 문을 열 수도 없이 에어컨도 안 되는 그런 더운 버스 안에 갇혀서 어린아이들과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면서 견딜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검문소에서 저희가 버스를 타고 들어가려고 하는데 탈레반이 총을 들이밀면서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고, 돌아가라고 그렇게 위협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다시 저희가 김일응 공사참사관님께 전화를 해서 도움을 요청했더니 김 참사관님께서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말씀하셨고 한 시간 후에 저희가 드디어 공항으로 진입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 김어준 : 그러니까 버스 없이 시도를 했었는데 그건 불가능했고, 그리고 버스를 타고 나서도 공격을 받았고. 공항으로 가는 버스라는 걸 사람들이 눈치채고. 그래서 문을 열 수도 없었고 오랜 시간 버스에 갇혀 있었다고 하셨는데, 그럼 버스를 타고 나서 공항에 들어가기까지는 얼마나 걸린 겁니까?
▷ : 버스를 타고 나서도 저희가 15시간 정도는 그 버스 안에서 아주 더운 버스 안에서 기다리면서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이트가 언제 열릴지, 또 탈레반이 언제 우리를 들여보내 줄지를 전전긍긍하면서 그렇게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굉장히 위험하고 또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 김어준 : 버스를 타고 나서도 15시간을 막연하게 기다렸다는 거죠? 이게 통과될지, 안 될지를 모르니까.
▷ : 네, 15시간 동안 기다려서 저희가 가까스로 들어갔습니다.
▶ 김어준 : 자, 굉장히 힘든 15시간이었을 것 같은데. 그런데 마침내 버스가 통과됐고 김일응 참사관을 다시 만났어요. 처음 보고서 무슨 말을 했습니까? 어떤 대화를 나눴나요?
▷ : 제가 김일응 참사관님을 다시 만났을 때 저희는 그저 서로 껴안고 울기만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때 제가 당신은 마침내 우리의 목숨을 구해 줬다, 당신이 드디어 이 일을 해냈다고 외치면서 그렇게 울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김 참사관님은 저희의 목숨을 구해 주신 아주 위대한 영웅이십니다.
▶ 김어준 : 알겠습니다.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카불에서 이슬라마바드를 거쳐서 한국에 입국하셨는데, 인천공항에 도착할 때까지도 한국에서 어떤 대우를 받을지, 한국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 많으셨을 것 같은데. 인천공항에 도착해서의 과정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끼셨는지.
▷ : 처음에 카불에서 이슬라마바드까지 올 때는 저희가 군 전용기 2대로 왔는데 여기서는 앉는 자리가 있는 비행기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파키스탄에서 한국으로 올 때는 아주 큰 좋은 비행기를 타고 왔기 때문에 자리도 편했고 편안하게 올 수 있는 그런 비행이었습니다. 또 한국이라는 평화로운 국가에 와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니까 저희도 기뻤고요.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 한국 사람들이 따뜻하게 환대를 해 주셔서 저희도 깜짝 놀랐습니다. 또 이런 모든 지원을 해 주신 한국 사람들, 또 한국 정부에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을 하기 때문에 어떻게 이 감사하다는 기분을 말로 형언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 김어준 : 지금 진천에 있는 인재개발원에 계시는데 시설이라든가 환경이라든가 음식이라든가 또는 매일의 절차라든가 어떠십니까? 불편하신 점은 없으십니까?
▷ : 지금 이곳에 있는 환경이 굉장히 좋기 때문에 필요한 건 다 있습니다. 맛있는 할랄 음식도 나오고 있고요. 방도 좋고요. 또 와이파이, 인터넷도 되고 정말 모든 게 잘 갖춰져 있고 또 지금 현재 저희 4명의 아이들과 같이 있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저희가 자가격리 중이라서 이 검역 시설에서 저희가 매일매일 하루에 세 번씩 건강 상태, 증상, 발열 이런 모든 부분들을 확인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코로나19 관련해서도 저희가 관리를 잘하고 있고요. 또 반면 저희의 형제 자매들은 여전히 아프가니스탄에 남아 있기 때문에 또 저희 가족들이 걱정돼서 매일매일 그들에게 전화를 해서 그 상황은 어떤지 이런 것들을 체크하면서 지금 하루하루를 그렇게 보내고 있습니다.
▶ 김어준 : 알겠습니다. 자가격리 기간이 지나고 나서 대략 6주 정도, 4주에서 6주 정도 한국 정착을 위한 교육도 받으신다고 했는데. 모든 걸 다 놓고 왔기 때문에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서 불안하실 것 같아요. 앞으로 한국에서 정착하길 원하시는지 아니면 제3국으로 가길 원하시는지. 또는 만약에 어떤 일을 한다면 어떤 일을 하기를 원하시는지. 또 아이들에게는 어떤 걸 바라시는지. 한국에서 공부하기를 원하시는지 아니면 다른 나라에서 공부를 하길 원하시는지. 그런 개인적인 계획들이 궁금합니다.
▷ : 저는 한국에서 장기적으로 머물면서 일하고 살고 싶습니다. 또 한국 병원에서 일하고 싶은데요. 그 이유는 제가 18년 동안 병원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저의 아이들도 한국에서 교육을 받아서 한국에서 훌륭한 의사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결론적으로 한국에 좋은 친구들, 동료들이 많기 때문에 오랫동안 한국에서 일하고 또 즐겁게 그렇게 생활하고 싶습니다.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저희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저희에게는 다시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한국 정부가 우리를 이렇게 도와주고 또 대피시켜 준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지원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저희는 다른 나라로는 전혀 가고 싶지 않고 한국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 김어준 : 잘 알겠습니다. 다른 나라로 갈 생각이 없다. 친구들도 다 한국에 있고 해서. 같이 오신 분들 생각을 혹시 들어 보셨어요? 그분들은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 : 제가 아프가니스탄에 있을 때도 카불에서도 병원에서 일하는 동료들의 대표로서 김일응 공사참사관님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기도 했는데요. 제가 이 팀의 대표로서 지금도 사실 저희가 자가격리 중이기 때문에 대면을 할 수는 없지만 앱을 통해서 저희가 그룹 단체 방을 만들어서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와 같이 온 다른 친구들, 다른 동료들도 저와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에 가고 싶은 의향은 전혀 없고 다들 한국에 남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 김어준 : 지금 가장 큰 걱정은 뭔가요?
▷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 상황이 좋지가 않고 또 저희가 쇼크받은 상태고 모든 걸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그저 여기서 평화로운 삶을 살고 싶습니다. 저희에게 가장 큰 걱정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가족이 걱정이 되고요. 또 아이들, 또 아이들의 교육과 미래의 삶 이런 것들이 가장 큰 걱정입니다. 사실 저희 고국인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모든 걸 잃어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고국에는 희망이 없고 지금 현재 저희가 갖고 있는 가장 큰 걱정은 앞으로 아이들의 미래, 또 아이들의 교육, 이런 아이들의 미래 삶입니다.
▶ 김어준 : 마지막으로 이 방송을 듣게 될 한국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혹시 있으십니까?
▷ : 저는 바그람 한국 병원 팀의 리더로서 따뜻한 환대를 보내주신 한국 국민들과 또 특히 진천 시민분들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가족도 또 저희 모든 아이들도 한국분들께서 따뜻하게 성원해 주시고 환대해 주셔서 정말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게 있고요. 또 이런 인류애와 또 우정을 기억하면서 앞으로 이런 우정이 오랫동안 지속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너무 너무 감사드립니다.
▶ 김어준 : 인터뷰 감사하고요. 아프간 말로 감사하다를 어떻게 하죠?
▷ : 타샤코르, 타샤코르 (Tašakor) تشكر
▶ 김어준 : 타샤코르?
▷ : 네, 타샤코르
▶ 김어준 : 타샤코르. 제대로 했나요? 타샤코르. 제 발음 어때요? 타샤코르. 대충 맞다고 하지 마시고 정확하게 해주세요. 타샤코르.
▷ : 타샤코르. Thank you so much.
▶ 김어준 : Thank you so much. 그러면 마지막에 안녕 인사는 어떻게 해요?
▷ : 허다허패스, 허다하패스, 허다하패스 (Xudâ hâfez) خدا حافظ
▶ 김어준 : 어렵다, 이건. 다시요.
▷ : 허다하패스
▶ 김어준 : 허다하패스? 허다하패스.
▷ : 허다하패스. 맞아요
▶ 김어준 : 아까 땡큐 까먹었어.
◐ 통역 : 타샤코르.
▶ 김어준 : 타샤코르. 허다하패스. 잘했어요, 제가?
▷ : 아주 잘하셨습니다.
▶ 김어준 : 몇 점입니까, 이것?
▷ : 95점이에요.
▶ 김어준 : 95점. 그거 아닌 것 같은데. 타사코르. 허다하패스. 오늘 감사하고요. 진천에서 계시는 기간이 다 끝나고 나서 밖으로 나오시면 저희 스튜디오에서 한번 모시겠습니다.
▷ : 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
▶ 김어준 : 알겠습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타사, 타사코르. 타사코르였나? 하다하패스. 되는 것 같은데, 이제. 허다하패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결국 다 해 놓고 바이로 끝내네요. 허다하패스로 끝내려고 그랬는데. 그리고 통역에는?
◐ 김혜미 : 김혜미 통역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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