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제2공장]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10.29 참사 그 후의 이야기
- 김초롱 (10.29 참사 생존자)
▶ 김어준 : 10.29 참사 희생자 유족들, 목격자들, 생존자들. 그분들 목소리 계속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생존자 한 분 연결해보겠습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서 당시 상황, 이후 심리상담 과정을 공유하고 계십니다. 10.29 참사 생존자 김초롱 씨 전화 연결되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 김초롱 : 네. 안녕하세요.
▶ 김어준 : 자, 그 참사를 겪었던 분들은 많은데, 이렇게 그 당시 상황, 그리고 심리상담 과정을 공유하고 방송 인터뷰도 하시는 분은 극히 드뭅니다. 이렇게 인터뷰 응하시기로 결심한 이유부터 좀 듣고 싶습니다.
▷ 김초롱 : 일단 두 가지가 있는데요. 며칠 전에 기자님한테 이제 연락을 받았는데, 지금 드러나지는 않지만 생존자 분들께서 저를 많이 찾고 계시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그래서 그리고 어제도 이제 뭐 커뮤니티 통해서 이제 쪽지나 이런 연락을 받았는데, 자기가 이제 생존자고, 글을 통해서 얼마나 불특정 다수의 생존자들, 지켜보는 사람들한테 위로가 되는지 꼭 알려드리고 싶다. 약간 이런 연락을 많이 받고 있었어요. 그리고 이제 두 번째는 그 뉴스공장 작가님 말씀이 사실 제가 그때 가장 좀 지쳐있을 때였는데, 그 어느 방송보다도 좀 진정성이 느껴지고, 좀 믿을 수 있겠다, 이런 신뢰감이 좀 생겨서 좀 용기를 내게 됐습니다.
▶ 김어준 : 자,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다른 생존자 분들이 여러 가지 트라우마를 겪겠죠. 그런데 이제 이렇게 용기를 내서 글을 쓰고 말을 하시는 걸 보고 다른 생존자들도 힘을 얻고 있다는 걸 알게 돼서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시라고 제가 이해했는데. 자, 그날로 좀 돌아가보겠습니다. 직접 겪으셨던 날인데, 몇 시에 현장에 도착해서 몇 시에 빠져나오신 겁니까?
▷ 김초롱 : 일단 세계문화거리 그 메인스트림에는 9시 20분에서 30분 정도에 도착을 했고요. 30분 동안 그 거리에서 계속 놀았어요. 그냥 어디 뭐 사람들 구경하고,
▶ 김어준 : 그러셨겠죠. 네. 당연히.
▷ 김초롱 : 네. 사고현장 근처로 걸어가면서 이제 놀면서 걸어간 거죠. 그래서 일단 사고현장 근처에 어쨌든 유명한 뭐 라운지라든지 아니면 어쨌든 그 앞에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니까 온 김에 그 메인스트림은 가봐야 되지 않겠냐 해서 30분에 걸쳐서 그 사고현장까지 도착을 했고요. 그 근처에 다다랐을 때는 아마 10시쯤이었을 겁니다. 그러고선 이제 그 근처에 다다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좀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압박감이 심하긴 했었고, 그런데 이제 전혀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거나 뭔가,
▶ 김어준 : 압박감은 있으셨지만 사고가 날 거라는 상상도 못하셨겠죠, 당연히. 그렇죠?
▷ 김초롱 : 네. 당연히 그랬고, 그냥 점차 갈수록 압박감이 좀 심해지는데 좀 기다리면 풀리겠지. 그러니까 왜냐하면 원래 그랬던 곳이기 때문에 좀 버티고 이제 버티다 보면 이게 반드시 정체가 풀려서 아무 일, 뭐 괜찮겠지, 이런 마음으로 계속,
▶ 김어준 : 네. 네. 당연히.
▷ 김초롱 : 그 현장까지 갔었던 것 같아요. 네.
▶ 김어준 : 그러다가 이게 발이 땅이 안 닿는다든가 숨이 안 쉬어진다든가 그런 순간이 왔을 것 아닙니까?
▷ 김초롱 : 네. 거기가 이제 그 사고현장 그 T자형 골목에서 T자로 꺾이기 바로 직전까지 제가 그곳에 서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갑자기 이제 앞뒤로 압박이 심해지면서 발이, 어? 발이 안 닿는다, 이런 마음이 딱 들기 시작하면서 발이 안 닿음과 동시에 이제 신장 압박이 좀 심해졌고, 동시에 또 이제 주변에 계신 분들이 다 키가 큰 남자 분들만 계셔서 시선, 그러니까 시야 확보가 전혀 안 되던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주변에 무슨 상황이 일어나는지도 다 안 보이고, 깜깜하고, 숨은 안 쉬어지고 그런 상황이었는데 이제 제 옆에 옆에 뒤쪽에 계신 남자 분이 그 와이키키 가게 벽면으로 붙어야 산다, 이러면서 저를 옆으로 훅 미셨거든요. 그 힘 때문에 벽에 붙어서 약간 숨을 쉴 수 있게 됐고, 벽을 그러니까 벽을 등을 지고서 이제 등 힘으로 이제 그 녹사평 그러니까 사고현장 반대 방향으로 가야 된다라는 얘기를 계속 하셔 가지고 이제 등 힘으로 가다가 와이키키 가게 사장님이 1층 문을 열어주셔서 이제 거기서 제가 좀 숨을 트였죠.
▶ 김어준 : 굉장히 이제 듣고 보니까 운이 좋으셨네요, 그나마.
▷ 김초롱 : 네. 그런데 그때는 제가 운이 좋았다라는 걸 느끼지도 못했어요.
▶ 김어준 : 그러셨겠죠.
▷ 김초롱 : 네. 조금만 버티면 풀리겠다라는 게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약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 가지고.
▶ 김어준 : 이게 와이키키 사장님이 마침 그때 문을 열어줬고, 그래서 그 안에 들어가면서 초롱 씨 입장에서는, 김초롱 씨 입장에서는 상황이 종결된 거예요, 그렇죠?
▷ 김초롱 : 네. 맞아요. 맞아요.
▶ 김어준 : 네. 그전까지 그 직전까지 숨이 안 쉬어진다, 발이 땅에 안 닿는다, 어떡하나 큰일났다 했는데 어떤 분이 벽으로 붙어야 산다고 밀어줬고, 마침 또 문을 열어줬고, 그래서 그 안에 들어가서 아 다행이다 상황 종료된 거예요, 그렇죠?
▷ 김초롱 : 네. 맞아요. 그래서 어 이제 저쪽은 사람이 너무 많고 사람들이 소리도 너무 많이 지르니까 저쪽은 안 되겠다. 이건 노는 게 아니다 해서 반대 방향으로 가야지 하고 이제 그때 그렇게 생각하던 무렵에 이제 뒤로뒤로 이렇게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고, 남자 분들, 성인 남자 분들이 확 이제 방향을 트니까 이제 흐름이 한 번 바뀌었어요. 그래서 이제 그 흐름을 타고 이제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는데, 바로 옆 가게에 새마을회관이라고 정말 이제 몇 m 안 되는 바로 옆 가게인데 거기에 제가 그때 잃어버렸던 친구가 거기서 대피를 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그 친구를 만났는데 또 새마을회관 사장님께서는 친구면 일단 여기서 같이 머물러라, 이래 가지고 이제 거기서 인파가 해결이 될 때까지 저희는 그 술집 앞에 이제 테라스 같은 데서 서서 있었어요.
▶ 김어준 : 알겠습니다. 김초롱 씨 개인적으론 정말 천만다행이고, 대단한 운이었다고 생각이 결과적으론 드는데, 그렇게 해서 살아남고, 그 이후에 바로 본인도 겪을 뻔 했던 그 참사를 이제 목격했잖아요. 참사 직후에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뭡니까?
▷ 김초롱 : 일단 자책감이 제일 심했고요. 그 그러니까 저 같은 경우에는 현장에서 있을 때 인지하는 심각성보다 집으로 돌아와서 뉴스를 보면서 내가 있었던 현장의 실체를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명확하게 알게 되는 그런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알면 알수록 내가 도대체 무슨 어떤 현장에 있었던 거지? 또는 저런 현장 가운데 있으면서 놀 생각을 했다고? 약간 이런 생각들, 그리고 그때 내가 본 게 사람들이 그냥 일시적으로 쓰러진 게 아니고 정말로 사람들이 죽었구나. 약간 이런 게 이제 현실감과, 현실로 느껴지면서 죄책과 자책, 그리고 무기력한, 그리고 그냥 미안한 마음, 뭐 이런 것들 때문에 사실 일상생활이 아예 안 됐죠. 진짜로, 네.
▶ 김어준 : 본인이 사고를 만들어낸 건 아닌데도 죄책감이 그렇게 들었어요? 나만 살았다?
▷ 김초롱 : 나만, 그러니까 단순히 나만 살았다, 이런 느낌은 아니고요. 그러니까 타인의 죽음을 나의 죽음처럼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게. 저 같은 경우에는 정말 한 발자국만 더 갔으면 그 사고현장에서 못 빠져나왔을 그런 입장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딱 한 발자국만 안 갔기 때문에 살아남은 입장이었던 거예요. 그 죽음의 직전에 등을 돌려서 다른 쪽으로 갔기 때문에 살아난. 그런데 그게 어떤 느낌이냐면 되게 허무하다, 이렇게 살고 죽는 게 이렇게 나뉜다고? 그리고 나도 저렇게 저런 참사의 피해자가, 희생자가 될 수 있었는데, 나는 그럼 지금 왜 살아있는 거지? 약간 이런, 그리고 나도 그때 한 번 죽었다고 생각을 받아들인 거죠. 진짜로 마음 속으로는.
▶ 김어준 : 그런 마음을 경험을 가지고 한 사람으로 희생자들 명단도 공개하지 않고, 영정도 없이 분향하고, 이런 일들은 어떻게 지켜보셨어요?
▷ 김초롱 : 제가 뉴스를 보면서, 그리고 일상 힘든 일상을 보내면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거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그립고, 보고싶고 그런 마음이 드는 마음이 되게 슬펐거든요. 그래서 그때 이름이라도 알았으면, 얼굴이라도 알았으면 뭔가 집에서 기도라고 할 텐데. 명복을 계속해서 매일매일 생각날 때마다 매순간 할 텐데, 이런 생각을 정말 많이 했는데 명단 공개라든가 이제 사진 공개라든가 이런 게 이슈가 될 때 너무 슬펐어요. 그리고 동시에 유족 분들 마음에 얼마나 멍울이 질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나마저도 이렇게 그리움에 사무치는데 유족들은 어떤 생각이 들까. 그러니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런 슬픔이었던 것 같아요.
▶ 김어준 : 참사 이후에 혹시 현장에 가보셨습니까?
▷ 김초롱 : 네. 한 총 3번 정도 갔고요. 최근에 있었던 49제까지 참가를 하고 왔습니다.
▶ 김어준 : 왜 그렇게 여러 번 가신 겁니까?
▷ 김초롱 : 모르겠어요. 그냥 계속 그리워요. 그립고, 보고싶고, 찾아가게 되는 거예요, 그냥. 그냥 내가 지금 마음의 여유가 되고, 그리고 시간의 여유가 된다면 보고싶은 사람들한테 가잖아요. 그런데 다만 형태가 없어서 더 슬플 뿐이지 뭔가 그런 마음으로 계속 그냥 가게 되더라고요.
▶ 김어준 : 자, 2부 시간이 다 됐는데 제가 한두 가지 더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3부에서 다시 한 번 연결하겠습니다. 조금 있다 다시 뵙겠습니다, 김초롱 씨.
▷ 김초롱 : 네.
▶ 김어준 : 10.29 참사 생존자 김초롱 씨 2부에서 전화 연결했었는데, 스튜디오에 도착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스튜디오에 직접 모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초롱 : 감사합니다.
▶ 김어준 : 자, 저희가 2부에서 했던 얘기 잠깐 되짚어볼 대목 한 가지가 생각이 났는데, 이제 발이 공중에 떴어요, 밀려서. 그래서 숨이 안 쉬어져요. 그런데 어떤 남자 분이 벽으로 밀어줬어요. 그런데 마침 거기가 와이키키 가게 앞이었어요. 그런데 또 마침 그 와이키키 사장님이 문을 열고 그 주변에 있는 몇 분을 받아들인 것 아닙니까? 그때 몇 분이나 들어갈 수 있었던 겁니까?
▷ 김초롱 : 아이, 어린아이 포함해서 총 6명이었었어요.
▶ 김어준 : 6명. 그러니까 그 아마 그 와이키키 사장님은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하고 왜 이렇게 시끄러워 하고서 문을 열었겠죠?
▷ 김초롱 : 사실은 이제 가게 안으로 들어오지 마세요, 라고 화가 잔뜩 나셔서 나오셨어요. 그런데 나와보니까 어? 이거 좀 이상하다 이러니까 일단 가드 분들한테 자물쇠로 잠근 그 1층 문,
▶ 김어준 : 상황이 보통 상황이 아니다 보니까 큰일나겠다 싶어서 가게 앞에 뭉쳐있던 분들 몇 분을 받아들인 거예요.
▷ 김초롱 : 네. 네. 바로 그 앞에 있던 분들을.
▶ 김어준 : 받아들인 건데, 그러니까 김초롱 씨는 사실 몇 발자국 차이로 살아나신 거네요. 그때 그 문을 열고 본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 김초롱 : 그렇죠. 그 일단 들어가자마자 숨이 팍 쉬어지면서 진짜 살았다, 약간 이런 생각이 약간 들었으니까요.
▶ 김어준 : 이런 건 어떻게 된 겁니까?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굉장히 운이 좋으셨던 건데, 몇 발자국만 다른 곳에 있었어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죠. 그렇죠.
▷ 김초롱 : 거의 저도 아마 참사 희생자로 명단이 올라갔을 거다라고 생각을 해요. 그 정말 딱 간발의 차로. 그래서 더 지금 참사에 더 제가 감정이입을 하는 거예요. 이게 남일이 아니라 내 일이다. 내 일이었겠다. 약간 이렇게.
▶ 김어준 : 그래서 그 희생자 분들이 이제 얼굴이라도 알고 싶고 보고싶고 그립다고 하셨잖아요.
▷ 김초롱 : 네. 네.
▶ 김어준 : 그렇다는 얘기는 저는 이제 이런 일을 겪어보지 않아서 그 감정상태를 정확하게 모르겠는데, 그게 나도 그게 내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그분들의 일부가 되는 겁니까? 감정적으로.
▷ 김초롱 : 일부가 아니라 나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 김어준 : 동일시하게 되는.
▷ 김초롱 : 동일시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유는 없는 것 같아요. 그,
▶ 김어준 : 이유는 모르겠는데.
▷ 김초롱 : 네. 그냥,
▶ 김어준 : 그런데 그분들은 가고 본인은 살아남아서 죄책감도 들게 되고, 그래서 계속 그 장소로 가시게 된다고요.
▷ 김초롱 : 네. 그리고 어쩌면 그냥 나, 나 대신 또는 내가 아주 운이 좋아서,
▶ 김어준 : 나 대신. 그래서 죄책감이 들고.
▷ 김초롱 : 그렇죠.
▶ 김어준 : 그리고 그러다 보니까 사진도 없고 명단도 없는 게 너무 야속하고.
▷ 김초롱 : 이게 그리운데 형체가 없으니까 도대체 뭘 보면서 그리워해야 되지? 이런 마음이 좀 그러니까 사무친다 그러죠. 그 그냥 사무쳐요. 그 사실 이제 그래서 상담심리를 받을 때, 심리상담을 받을 때도 나도 내가 왜 이런지 모르겠다. 이 감정의 원인이 뭔지 모르겠다 그랬더니 저희 심리상담 선생님께서 ‘사람이니까요’ 딱 이렇게 말씀해 주시는 거예요. 사람이니까 그렇다. 그래서, 네.
▶ 김어준 : 그런데 내년에도 이태원에 갈 것이라고 밝히시는 바람에 한편에서는 왜 거길 또 가냐는 비난도 있고, 여러 가지 모진 말도 들으신 걸로 아는데, 이미 여러 번 거기를 가셨고, 그리고 내년에 할로윈 때 또 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잖아요.
▷ 김초롱 : 네.
▶ 김어준 : 그거는 어떤 마음입니까?
▷ 김초롱 : 살면서 어떤 고난이 닥쳐도 우리는 반드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고, 어떤 사람들한테는 이태원이 일상인 거거든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까 이태원이 거의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거의 죽은 거리가 되어 있었어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사람들이 잘못한 건 없거든요. 그러니까 참사의 원인이 이태원이 잘못한 게 아니고, 할로윈이 잘못한 게 아닌데 왜 그들이 아직까지도 혐오의 대상으로 남아있는지 전혀 납득할 수가 없었어요. 그들의 일상을 찾고, 나의 일상을 찾고, 우린 반드시 일상을 찾아야 되니까요. 그래서 뭔가 이런 똑같은 일이 발생하려면, 발생하지 않으려면 사람 많은 덴 가는 게 아니야, 파티는 하는 게 아니야, 저런 건 나쁜 거야, 유흥은 나쁜 거야, 이렇게 가르치는 게 아니라 참사의 원인, 유일한 원인은 군중밀집을 관리하지 않은 그게 유일한 원인이다라고 알려주고, 왜 사람들은 혐오의 대상을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가, 이런 걸 알려줘야 되는데, 그런 의미에서,
▶ 김어준 : 내가 산 증인이기 때문에 굳이 가야 되겠다, 계속.
▷ 김초롱 : 네. 이런 걸 알려줘야 되는데 이태원 자체를 혐오하고 할로윈을 혐오하고 이러면 안 된다는, 일상으로 다시 우린 반드시 돌아가야 된다는 걸 내포한 건데 이제 그 ‘나는 내년에도 이태원 갈 것이다’ 약간 이런 문장으로만 전달하니까 이제,
▶ 김어준 : 정신없는 사람, 이런 취급을 하는 거죠.
▷ 김초롱 : 그렇죠.
▶ 김어준 : 말씀 듣고 보니까 와이키키 사장님도 그 트라우마가 대단할 것 같은데, 혹시 이분 영업을 다시 재개했습니까?
▷ 김초롱 : 49제 때 제가 갔을 때까지만 해도 와이키키는 영업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 김어준 : 여전히?
▷ 김초롱 : 네.
▶ 김어준 : 그러니까 그 일을 겪은 그 생존자들, 와이키키 사장님도 생존자라고 할 수 있죠.
▷ 김초롱 : 그렇죠.
▶ 김어준 : 목격자이자 생존자라 할 수 있는데, 그분들이 트라우마가 대단한 거군요. 계속 이어지는 셈인데,
▷ 김초롱 : 그렇죠.
▶ 김어준 : 그런데 이제 처음 인터뷰할 때 그런 말씀하셨잖아요. 내가 이 심리상담 과정을 공유하는 이유는 틀림없이 나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혼자가 아니고 같이 위로 받고 같이 치유되자고 그렇게 공유하신 거죠, 지금? 내용은.
▷ 김초롱 : 네. 맞아요. 그러니까 거의 연결성이 어떻게든 사람을 살리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제가 그런 식으로 극복을 했기 때문에. 그러니까 내가 갖고 있는 고통이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고통, 특히 이거를 목격한 사람들, 살아남은 사람들은 비슷한 감정을 다 갖고 있을 거라서 제가 쓰는 글은 악플을 다는 사람이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서 쓰는 글이 아니에요. 나와 같은 사람들이 보라고 쓰는 거기 때문에, 그리고 위로를 받으시고 어떻게든 사는데 도움이 되시라고 쓰는 글이기 때문에 사실 악플이나 모진 말이나 이런 건 저를 힘들게 하지 않아요.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 과정을 공유할 거고, 네.
▶ 김어준 : 김초롱 씨처럼 본인의 감정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표현해낼지 계속 고민하고 공개적으로 발언하고 그러지 못한 분들도 있겠죠.
▷ 김초롱 : 네.
▶ 김어준 : 이게 도대체 어떤 감정인지 모르겠고, 계속 거기에 갇혀있고 빠져나오지 못한 분들 있을 텐데, 그러지 말라고 그런 일을 하시는 것 아니에요, 그렇죠?
▷ 김초롱 : 네. 맞아요.
▶ 김어준 : 그러지 말라고 지금 이 인터뷰도 하시는 거고. 마지막으로 혹시 지금까지의 정부 대응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십니까?
▷ 김초롱 :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제대로 사과하는 법을 교육 받지 못한 나라구나, 이런 생각이 좀 들었어요. 그러니까 인정할 줄 알고, 잘못을 시인하고 변화하겠다고 약속하고, 그런 것들이 얼마나 일상으로 돌아오는데 도움이 되는지 전혀 모르고. 생각해보면 제가 커오면서도 사람들한테 또는 주변인들한테 제대로 사과하고 인정할 줄 아는 어른들을 내가 본 적이 있나? 없는 것 같거든요. 그리고 그런 어른들이 위에 계시는 거고요. 그런데 그런 어른들이 위에 계실 때 이런 참사 같은 큰 사건이 있으면 결국 상처를 받는 건 국민들이고, 거의 약간 그런 거예요. 그 부모예요, 국가는. 국민은 자식이고. 제대로 사과하고 인정하고 이런 것들 외면하지 않고, 그러니까 하지 않고 외면하기만 하면 뭔가 버림 받았다는 느낌이 계속 들겠죠. 그래서 사과할 줄 모르는 정부, 아니. 어른들, 약간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 김어준 : 알겠습니다. 오늘 여기까지 듣고요. 또 기회가 닿는다면 이런 감정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가지 모습을 띄게 될 수도 있으니까 또 모실 기회를 마련해보겠습니다.
▷ 김초롱 : 네.
▶ 김어준 : 자, 10.29 참사 생존자 김초롱 씨였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초롱 :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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