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미리가 쓴 칼럼 제목과 임미리 신상명세서
민주당만 빼고
'당의정의 달콤함' 보다 중요한 것
산재와 계급 대물림
민주노총은 정부에 경고해야 한다
대통령이 책임져라
더많은 정치가 필요하다
임미리 신상명세서
1967.12. 대구 생
1974. 서울 이주
- 학력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사학과
한양대 지방자치대학원 행정학 석사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치학 박사
삼성물산 화공팀
시티뱅크 당좌계(임시직)
성북신문 기자, 편집차장
노원신문 편집국장
드림브리지 대표
(주)고대넷 대표이사
(사)현대사기록연구원 상임이사
성남시사편찬위원회 상임연구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주의연구소 전문위원
한신대 학술원 전임연구원, 사회학과 강사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 가톨릭대 사회학 강사
- 정당
1998. 한나라당 서울시의원 출마
2007. 민주당 손학규 대선 후보 경선캠프
2007. 창조한국당 홍보부단장, 사이버본부장, 자원봉사센터장 등
예상은 했지만 벌써부터 신상이 털리고 있어 번거로운 수고 더시라고 올립니다. 잠깐씩 한 것은 제외했고 올린 것 말고 더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랑스럽지는 않아도 인생 치열하게 산 것은 자부합니다. 아마 신상 털고 계신 분들 가장 큰 관심사는 정당일 것 같습니다.
대학 다닐 때부터 선거 좋아했습니다. 정치의 꽃이라 여겼고 치열한 경쟁이 좋았습니다. 대학 여러 선거에 참여(후보X)했던 것을 시작으로 해 졸업 직후부터 지역신문에 있으면서 동네 의원들의 선거홍보물 제작 일을 맡아 했습니다. 그러다 1998년 제 회사를 차렸고 그 과정에서 출마 제안을 받았습니다. 선거비용 대준다기에 출마했습니다. 성동구 한양대를 포함한 선거구였는데 한양대 정문 앞에서 대학생들 대상으로 유세도 했습니다. 보수정당 후보가 대학 앞에서 유세하니까 오히려 구경도 많이 왔던 것 같습니다. 선거 끝나고는 돈이 좀 남아 운동원 해준 여성분들하고 나이트 가서 놀았습니다.
탈당한 건 아마 그해 말이나 이듬해 초였을 겁니다. 서울시 기초단체장 다수가 담배세와 종토세의 광역/기초세 교환을 요구했을 때 강남, 서초, 중구 등 잘사는 동네 한나라당 기초단체장들이 반대했습니다. <월간 지방자치>에 교환 필요성을 강조하는 글을 투고했고 한나라당 소속 의원실마다 “한나라당이 부끄럽다”는 제목의 글을 뿌린 뒤 탈당계를 제출했습니다.
2007년에 대선을 경험해보고 싶었습니다. 장사치로는 기초선거와 국회의원선거는 할 수 있어도 개인회사가 대선을 할 수는 없었기에 캠프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는 분이 계시던 손학규 캠프로 갔습니다. 거기서 잠깐 있다가 왕따 당하고 그만 뒀습니다. 다들 조직적으로 결합했는데 저만 어디서 굴러들어온 돌이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대선이 꼭 하고 싶었기에 문국현 후보의 창조한국당을 다시 갔고 거기서 여러 일을 했습니다. 대선 직후 태안 기름유출사건이 났고 ‘자봉이’라는 자원봉사단을 만들어 갔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납니다. 워낙 왕성하게 활동해서 공중파에서도 취재하러 왔었는데 당명은 가리고 내보내더군요. 2008년 총선 때까지 있었는데 문국현 당대표하고 맨날 싸웠습니다. 회의시간에 제가 어떤 건으로 항의를 했더니 “그럼 임미리가 당대표하지”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총선 때는 문 대표 선거사무원들을 당사에서 몰아내기도 했습니다. 노원구 후보가 왜 중앙당에서 사무를 보냐고 말입니다. 그렇게 싸우다 총선 끝나고 나왔습니다.
정당 경험은 위에 적은 것 외에도 몇 가지가 인터넷에 나돌 겁니다. 예전에 제 이름 검색하다가 이명박 후보 지지선언 명단에 들어가 있는 것도 봤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창조한국당 있을 때니까 아마 누군가가 선거장사 할 때 받은 제 명함을 끼워 넣은 것 같습니다. 안철수 캠프에도 이름이 올라가 있을 겁니다. 박사 과정 중이었는데 잘 아는 분이 이름을 넣겠다 하기에 마음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름만 넣었지 캠프에는 나가지 않았습니다.
인생 참 복잡다단하게 살았는데 지금과 비슷한 지향을 가지게 된 두 가지 계기가 있었습니다.
우선, 2005년 몸이 안 좋아 하던 일을 접고 알바 비슷하게 긴급조치9호 30주년 기념문집을 맡아 만들 때였습니다. 70년대를 산 여러 어른들을 만나고 크게 감명 받았습니다. 80년대 학생운동이 조직적 결단의 시대였다면 70년대는 개개인이 실존적 결단으로 운동을 했던 시기입니다. 학교에서 봤던 80년대 운동권들 하고 크게 달랐고 ‘운동’이란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입니다. 저는 고대 다닐 때 화염병 던지는 여학생으로 제법 유명했지만 데모는 하되 운동은 안 하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다음은 세월호 사건입니다. 그전까지 제 삶이 허공에 떠있었다면 2014년 그날 이후 저는 처음으로 역사 속에 몸을 담궜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 뒤로는 이전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치열하게 살아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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