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제2공장]
참사 목격자가 말하는 10월 29일 이후
“잊혀짐을 강요당하는 현실, 이해할 수 없어”
- 김운기 씨 (10.29 참사 목격자)
▶ 김어준 : 10.29 참사 희생자 유가족 분들 연속 인터뷰했고요. 오늘은 참사 목격자 한 분 모셨습니다. 10.29 참사 현장을 직접 목격하셨고, 구조활동도 하셨던 김운기 씨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 김운기 : 네. 안녕하십니까?
▶ 김어준 : 자, 10.29 그러니까 참사 직후에 현장에 도착하셨나 보죠?
▷ 김운기 : 그 현장에 있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김어준 : 그러니까 그 압사 상황에 군중 속에 계셨던 거예요? 아니면,
▷ 김운기 : 네. 그렇습니다.
▶ 김어준 : 아, 그래요?
▷ 김운기 : 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그 사건이 발생되는 시점에서 그러니까 그 직전에 그쪽 그 세계음식거리 쪽에 있다가 그 길 건너서 소방서 쪽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그쪽으로 건너갔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 김어준 : 그게 대략 몇 시쯤 되는 시간대입니까?
▷ 김운기 : 그게 지금 제 머릿속에서 시간이 다 꼬여서 좀 애매한데요.
▶ 김어준 : 그러니까 10시 15분께 그 신고가 들어갔다고 하고, 그때를 기점으로 보는데, 그 언저리에 그 군중 속에 계셨다는 거네요?
▷ 김운기 : 네. 맞습니다. 그래서 더 정확히 말씀을 드리면 10시 아마 좀 전이었을 거예요. 제가 그 이전에 이제 저녁식사를 하고서 그쪽으로 다 올라갔었었는데,
▶ 김어준 : 목격자 분이 아니라 생존자라고 해도 될 것 같은데.
▷ 김운기 : 굳이 말씀을 드리면 그 운명차로다가, 그러니까 그들 사이에 있었을 수도 있었던 그 운명을 제가,
▶ 김어준 : 살짝 피하신.
▷ 김운기 : 피한 사람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 김어준 : 그러면 그 시간대 현장에 계신 건데, 그러면 이제 지금 생생하게 기억하실 것 같은데 어떤 장면들이 지금 기억나십니까?
▷ 김운기 : 일단은 그 소리가 일단은 기억에 제일 많이 남고요. 그러니까,
▶ 김어준 : 소리.
▷ 김운기 : 그러니까 그러니까 가장 먼저부터 기억이 나는 건 뭐냐면 이제 건너갔다가 소리가 들려서 다시 길을 다시 건너갔거든요. 그런데 이미 그때쯤 되면 그 메인 진입로 자체는 다 진입할 수 없는 상태였고, 그 돌아서 좀 멀리 있는 골목으로 해서 다시 들어갔는데 그때 뭐 그러니까 시민들이, 시민들이 이제 길을 좀 트고 있었습니다. 길을 좀 트고 있었고, 그길을 트는 이유를 저는 몰랐었죠. 그때는 뭐 그냥 작은 뭐 싸움 정도가 났겠거니 생각을 했었는데,
▶ 김어준 : 소리가 굉장히 소란스러운데,
▷ 김운기 : 소란스러운데,
▶ 김어준 : 이유는 모르겠고.
▷ 김운기 : 네. 맞습니다. 그래서 이제 앞쪽으로 좀 더 진입을 했었었습니다, 그때. 그런데 그때 봤었던 게 이제 제일 처음에 제일 놀라웠던 장면이 뭐였냐면 그 이태원에 있는 그 가게들 앞에 테라스 쪽에 사람들이 각 그러니까 몇몇 매장 앞에이제 사람들이 다 누워있고,
▶ 김어준 : 이미 쓰러진 분들이 다수 발생했던 상황이고.
▷ 김운기 : 네. 네. 그래서 그 사람들이 좀 더 이동이 돼서 CPR을 받고 있었던 그런 상황이었었죠. 그래서 처음에는 제가본 게 한 5명 정도여서 저는 그 인원들이 그냥 뭐랄까 그냥 졸도하거나 그런 부분들인 줄 알았는데, 앞쪽을 보니까 다른매장에도 더 있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러면서 시민들이 다 붙어서 CPR하고 있었고요.
▶ 김어준 : 그러니까 도착 그러니까 거기 그 군중에 계셨다가 살짝 빠져나와 가지고,
▷ 김운기 : 살짝 빠져나왔다가, 네.
▶ 김어준 : 다시 이제 그 길로 돌아가는 와중에 봤더니 이미 참사가,
▷ 김운기 : 네.
▶ 김어준 : 진행 중이었는 상황이네요.
▷ 김운기 : 진행 중이었던 상황이었고, 그리고,
▶ 김어준 : 그때는 아직 소방관이 도착하지 않았던 때니까.
▷ 김운기 : 네. 소방관은 도착하지 않았고, 제가 봤었던 거는 이제 시민들.
▶ 김어준 : 시민들이.
▷ 김운기 : 자체적으로다가 그렇게 길 트고, 이동시키려고 노력하고 있고, CPR하고 있었던 것들이었고요. 그다음에 봤었던 좀 공식적인 유니폼이라고 할 수 있는 거는 미군 유니폼이었습니다.
▶ 김어준 : 우리 경찰이나 소방관이 아니라.
▷ 김운기 : 경찰이나 소방관이 아니라,
▶ 김어준 : 아직은 아무도 도착하지 않은.
▷ 김운기 : 아무도 도착하지 않았었을 때입니다.
▶ 김어준 : 처음에는 그러면 그 현장에 마침 있었던 미군들이 몇 명이나?
▷ 김운기 : 미군은 한 제 기억에 한 셋 정도.
▶ 김어준 : 그때 마침 놀러왔던 미군들이,
▷ 김운기 : 놀러왔다고 할 수 있을지없을진 제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 김어준 : 왜 왔는진 모르겠으나,
▷ 김운기 : 네. 정복을 입고 있었고.
▶ 김어준 : 눈에 띈 것은 그 사람들이 마치 우리 그 소방관 혹은 경찰관처럼 사람들을 구출하고 있더라, 열심히.
▷ 김운기 : 그러니까 혼잡한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을 거예요.
▶ 김어준 : 정리하고 있었어요?
▷ 김운기 : 정리하고 있었고요. 그 길을 트고 사람들 구조하고 이동시킨 건 다 시민들이었습니다. 모조리 다.
▶ 김어준 : 그러니까 초반에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였네요?
▷ 김운기 : 100% 무정부.
▶ 김어준 : 국가가 없었네요.
▷ 김운기 : 없었습니다.
▶ 김어준 : 정복을 입은 경찰도 눈에 안 띄었어요?
▷ 김운기 : 정복을 입은 경찰, 정복을 입은 어떤 누구도 눈에 안 띄었고, 제가 그게 제일 당황스러웠던 점이었는데 왜냐하면 뭔가를 믿을 수 있는 그 컨트롤을 저희한테 신호를 줄 수 있는 그런,
▶ 김어준 :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라는 공무원,
▷ 김운기 : 없었습니다.
▶ 김어준 : 국가 기능, 정부 기능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
▷ 김운기 : 아무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길을 트고 있었던 사람들 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그 할로윈 코스튬을 입고 있는사람들이 길을 트고 정리를 하고 있었었죠.
▶ 김어준 : 그리고 본인도 그러면 그런 상황에서 혹시 CPR에 참여하거나 하셨나요?
▷ 김운기 : 네. 그래서 이제 바로 저도 그 마침 CPR을 배운 적이 있기 때문에 CPR에 참여를 했고, 그다음에 시민들이 다골목을 다 터서 골목으로다가 이제 CPR하는 사람들을 큰길로 이동하기 시작했죠.
▶ 김어준 : 사고가 정확히 10시 15분에 났는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죠? 지금은 10시 15분이라고 기점을 잡았는데, 그렇게 사람들이 압사 상황에서 질식하고 실려 나오기 시작한 건 더 일찍부터였을 수도 있겠네요.
▷ 김운기 : 제 생각에는 그럴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게 그날 기억을 되돌려보면 제가 이제 저녁식사를 하고 한남동 쪽에서 도보로다가 이태원 올라갔었을 상황이었거든요. 그래서 아무리 도보로다 천천히 올라갔다고 하더라도 이제,
▶ 김어준 : 10시 이전에 도착했을 것이다.
▷ 김운기 : 10시, 무조건 10시 이전일 거라고 전 생각이 되거든요, 사실.
▶ 김어준 : 그런데 10시 이전에 도착했을 때 그런 장면을 보셨다는 것 아니에요.
▷ 김운기 : 아닙니다. 10시 이전에 도착했을 때는 그 세계음식거리를 한 번 걸었었고,
▶ 김어준 : 아하. 그리고 다시 길 건넜다가 다시 돌아왔다.
▷ 김운기 : 다시 돌아왔을 때니까요. 그렇게 저는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네.
▶ 김어준 : 그런데 이제 지금 마침 어떤 경찰 혹은 어떤 소방관도 오기 전,
▷ 김운기 : 이었습니다.
▶ 김어준 : 부터 시민들이 그 교통정리를 하고, 그리고 CPR을 하고 있었고, 본인도 CPR에 참여했고, 그리고 그 과정 전체를 다 보신 셈이네요?
▷ 김운기 : 네. 어떻게 보면 이제 아까 이제 뭐가 기억에 잘 남는지 말씀하셨는데 사실상 제 기억에 뚜렷하게 남는 건 그마지막에 사람들 모포로다가 얼굴 덮는 장면이었죠. 왜냐하면 그때까지 아마 저를 포함해서 거기 있는 대부분 사람들 다현실을 인정하고 싶진 않았을 거예요. 왜냐하면 이렇게 하면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 김어준 : 너무 비현실적이죠. 서울 한복판에서.
▷ 김운기 : 너무 비현실적이었으니까요.
▶ 김어준 : 그러니까 이 사람들 잠깐 기절했을 것이다.
▷ 김운기 : 그렇죠.
▶ 김어준 : 그래서 CPR하면 충분히 호흡이 돌아올 것이고, 다들 젊으니까 또.
▷ 김운기 : 네. 네. 저 그러니까 사실은 제가 저보다 더 열띠게 현장에서 더 사람들 구조하기 위해서 헌신적으로 일했었던보통 시민들이 더 많아서 제가 뭐 이렇게 말하기도 좀 우습지만 정말이지 뭐랄까 다들 정말 최선을 다해서 그렇게 열심히했습니다.
▶ 김어준 : 다들 내 일처럼.
▷ 김운기 : 다들 본인 일처럼요.
▶ 김어준 : 그러면 그때 그렇게 CPR에 참여했고, 사람들 운송, 그 운반하고 길 트고 했던 분들이 지금 겪는 트라우마도상당하겠군요.
▷ 김운기 : 상당할 거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일단은 저만 해도 이게 그러니까 세월호 참사 때 같은 경우도 상당히 마음이 아팠지만 이건 제가 그 실려간 사람들 얼굴과 그 몸을 눌렀을 때의 그 촉감을 제가 기억을 하고 있거든요. 이것이 굉장히 생생한데다가 추가적으로 뭐랄까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한 끗 차이로다 제가 거기 누워있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것 자체가 굉장히 어떤 현실감을 상실하는 그런 요소가 좀 되었었죠.
▶ 김어준 : 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유가족들은 물론이고 현장에 있었던 분들도 잘 방송에 나와서 말을 하지 않으시려고 하거든요. 그런데 굳이 이런 어려운 자리에 직접 나오신 계기가 있었을까요?
▷ 김운기 : 일단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 같은 경우는 그 전체적으로다가 사람들이 얘기하고 있는 것처럼 그러니까 뭐랄까 일탈에 의한 사고여서 그들을 잊어야 되는 것 같이 표현하는 게 저는 너무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요. 왜냐하면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다 정말 보통사람들이었고, 그리고 그 사람들이 뭔가 뭐랄까 일탈적인 그런 놀이를 하기 위해서 나온 게 아니라 정말이지 하나의 그 즐거운 주말을 즐기기 위해서 길 걸으려고, 길을 걷고 같이 즐거움을 나누려고 온 사람들이었, 아주 보통사람들이었는데,
▶ 김어준 :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었는데.
▷ 김운기 : 네. 굉장히 보통사람들이었고, 그들이 뭐 일설에서 떠드는 것처럼 뭐 그런 어떤 특이한 그리고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정말 정말 보통사람들이 정말 보통의 거리를 보통의 마음으로다가 걷고 있다 그런 참사가 벌어진 거라는 사실을 저는 사람들한테 꼭 말을 하고 싶었고요.
▶ 김어준 : 직접 보셨기 때문에.
▷ 김운기 : 네. 왜냐하면 그전에도 그전에도 거기서 봤었던 게 혹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뭔가 이렇게 뭐 막 노출 있거나그런 게 아니라 가족들끼리도 이렇게,
▶ 김어준 : 많이 있었고,
▷ 김운기 : 네. 귀엽게 꾸미고 나온 그런 그런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 김어준 : 알겠습니다.
▷ 김운기 : 그리고 두 번째는 그렇게 해서 그들이 잊혀지는 것이 전 너무 안타까웠고요. 두 번째는 이 모든 그 처음에 행동했었던 것은 다 시민들이 직접적으로 했었던 것이라는 것을 꼭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시민들 자체가 자발적으로다가 그렇게 국가의 어떤 어떤,
▶ 김어준 : 도움도 없이.
▷ 김운기 : 도움도 없이 직접 했다는 것 자체가 저는 정말 그 위대함을 너무 크게 봤었다는 얘기를 꼭 하고 싶었어요.
▶ 김어준 :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그리고 그때 국가는 없었고 대신 시민들이,
▷ 김운기 : 시민들이.
▶ 김어준 : 시민들이 그 자리를 메꿨다. 그 사실을 꼭 알리고 싶었다.
▷ 김운기 : 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이제 이렇게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저에 대한 치유일 수도 있습니다.
▶ 김어준 : 스스로 괴로우시니까.
▷ 김운기 : 네. 네.
▶ 김어준 : 오늘 여기까지 듣겠습니다마는 또 모실 것 같습니다. 자, 김운기 씨였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운기 :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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