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형 나는 이 개혁에 찬성한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어제 국회를 통과했고 오늘 아침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효력이 발생했다.
나는 이 개혁에 찬성한다. 한국에선 임대인의 권리만 너무 일방적으로 강조되고 임차인의 권리는 거의 무시되어왔다. 이번 법률 개정으로 양자간 권리 사이에서 이제 조금 균형을 맞춘 셈이다.
이번 개혁으로 바뀐 것은 크게 보아 계약갱신청구권과 임대료상한제 둘로 나뉜다. 전자는 전적으로 찬성이고, 후자는 약간 아쉬운 점도 있다. 하나씩 나누어 보자.
그동안 한국에선 임차인에게 계약갱신을 청구할 권리가 없었다. 전세의 경우 2년이 지난 후 집주인이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한다. 월세는 더 심하다. 보통 1년 단위 월세의 경우에도 월세를 꼬박꼬박 냈는데도 1년 계약기간이 끝났을 때 집주인이 월세를 인상하면 그냥 따르거나 아니면 나가야 한다. 이사에 따른 비용이 집주인 보다 크기 때문에 재계약 시 협상에서 불리할 수 밖에 없다. 거주의 안정성 역시 심각하게 침해된다.
이에 비해 내가 실제로 경험 했던 외국의 경우는(미국과 호주) 계약갱신이 원칙이다. 세입자가 임대료를 계속 지급하는 한 임대인이 갱신을 거절할 수도 없고 일방적으로 나가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이건 미국이나 호주 만이 아니다. 내가 알기론 거의 모든 선진국이 그러하다.
우리 나라가 거의 모든 제도를 수입해온 일본만 하더라도 임차인의 권리가 매우 강해서 정 내보내고 싶으면 집주인이 사례금 조로 돈을 지불해야 할 정도다. 일본에 오래된 가게가 많다고 부러워하는데, 사실은 일본에선 임차인 권리가 지나칠 정도로 강해서 그런 측면이 크다. 왜 일본에서 이런 것을 들여오지 못했는지 늘 아쉬웠는데 이번에 조금이나마 개선되었다. 그러므로 이번에 주택에서 처음으로 계약갱신 청구권이 도입된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다.
전세의 경우 기존의 전세가 2년 단위로 되어 있어서 이번에도 2+2 로 도입된 것은 조금 아쉽다. 중고등학교 3학년제를 감안하면 3+3이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월세의 경우에도 2+2인 것 같은데 아예 월세의 경우엔 그냥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특별한 사유가 없는한 계속 임차할 권리를 주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이것 역시 앞으로 장기적으로 조금씩 개선되길 바란다.
한가지 불만스러운 것은 임차인을 거짓 사유로 퇴거시킨 것이 드러났을 때 집주인이 물어야 하는 배상금이 너무 작다는 점이다. 이사에 따른 여러 가지 심리적 비용과 금전적인 비용을 감안할 때 겨우 3개월치 임차료를 물어내게 한 것은 법 위반에 대한 벌금으로는 너무 작다. 위반 사실이 드러났을 때 내야 하는 벌금이 너무 작아서 앞으로 많은 집주인들이 거짓 사유로 퇴거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6개월이나 1년치가 어땠을까 싶다. 앞으로 개선되길 희망한다.
계약갱신청구권에 비해 임대료 상한제는 논란의 대상이 될 근거가 더 있다. 예를 들어 일괄적으로 연 5%로 상한을 정했는데 왜 5%인지 근거가 없다. 그것 보다는 물가상승률에 일정 퍼센트 포인트를 더하는 방식이 더 합리적이었을 것이다. 인상 기간을 1년 단위로 해서 매년 인상할 수 있게 한 것도 좀 아쉽긴 하다. 가격 규제가 너무 심하면 신규 투자가 억제될 수도 있으니 신규 주택은 대상에서 제외할 수도 있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것 때문에 임대료가 폭등할 것이라고 하는데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처음 도입되는 것이라서 시장이 일시적으로 불안정해질 수는 있다. 그러나 이를 의식해서 정부가 당장 오늘부터 효력이 발생하게 했기 때문에 집 주인이 대폭 올릴 수 있는 주택은 전체 임대 주택 중 그리 많지 않다. 시장 불안정은 한두달 정도로 일시적일 것이다. 막상 시장에 대한 영향은 기존 계약의 갱신청구권이 소멸되는 시점인 2~3년 후부터 차례로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다.
몇년 후 현재의 기존 계약자가 갖게 된 갱신 청구권이 소멸되었을 때, 그리고 그 동안 시장 임대료가 연 5% 이상씩 올라 있을 경우, 신규계약자를 상대로 연 5%를 넘는 임대료가 책정될 수 있지만 그것은 아무러나 시장가격에 의한 것이니 서로 받아들이면 된다.
미통당의 윤희숙 의원 등 일부 사람들은 이번 개혁으로 전세가 사라잘 것이라고 하는데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전세는 사금융으로 집주인이 임채인에게서 돈을 빌린 것인데 한국 전체적으로 약 700조에 달한다고 한다. 전세를 물리려면 그 돈을 어디에선가 빌려와야 하는데 어디서 그 돈을 마련하겠는가? 물론 이번 제도가 싫어서 아예 집을 팔 수도 있는데 그래도 그 집은 여전히 누군가가 집주인이나 세입자로 들어가 살 것이다.
전세는 집 값이 앞으로 계속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꺽이지 않는한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전세가 정말 없어진다면 그것은 부동산 불패론이 꺾였다는 뜻일 것이니 도리어 반가워 해야 할 일이다.
곧 통과가 예상되는 전월세등록제에 대해서도 나는 기대가 크다. 한국의 임대주택에서 정부에 등록된 주택은 끽해야 20% 정도 밖에 안된다. 앞으로 이것이 모두 등록을 거쳐 투명해지면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임대료 소득을 정부가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정부가 임대사업자 만이 아니라 임대사업자로 등록하지 않은 사람들의 임대소득에 대해서 너무 많은 특혜를 준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이렇게라도 해서 임대소득자가 자발적으로 임대소득을 신고하도록 유인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이제 등록제가 실시되면 더 이상 그런 유인을 제공할 필요가 없어진다. 아직 전산 시스템이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 처음엔 상당한 혼란이 예상되긴 하는데 나는 그래도 일단 먼저 시작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자기들이 정권을 잡은 후 부동산에 관해선 처음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해냈다. 그것이 보유자가 아니라 임대차 시장에 관한 개혁이라는 것은 좀 아쉽지만 그래도 어딘가?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훨씬 낫다. 잘 한 건 잘했다고 하자.
-----
후기: 이번에는 정부가 잘했다고 했는데 이걸 갖고 언론이 어제처럼 또 도배를 할지 의심스럽다.
'정치 뉴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어준의 다스뵈이다 124회 재정건전성하고 앉아있네, 표창장위조, 전대#2 (0) | 2020.08.02 |
---|---|
김남국 의원이 윤희숙 의원에게 (0) | 2020.08.02 |
'국회 세종의사당' 설계, 이미 진행되고 있다!(이춘희)│김어준의 뉴스공장 (0) | 2020.07.31 |
임대차 3법 부작용?...소급 적용으로 안정적!│김어준의 뉴스공장 (0) | 2020.07.31 |
[대통령의 말]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장치조립 착수 기념행사 (0) | 2020.07.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