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제1공장] -전화연결
5.18 직전의 광주 상황 담긴 녹음테이프 공개
"평화적 시위 상황 생생히 담겨"
- 조규백 (5.18 당시 전남대방송 학생기자)
▶ 김어준 : 지난 80년 5월 전두환 신군부의 계엄군이 광주 진압 작전 들어가기 직전 5월 14일부터 16일까지 사흘 동안 도청 앞 분수대에서 민족민주화대성회라는 집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기록한 녹음테이프가 41년 만에 공개됐는데요. 5·18 당시 전남대방송국 학생기자 조규백 씨 연결해 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 조규백 : 네, 안녕하세요.
▶ 김어준 : 저희가 오프닝에서도 들었습니다만 이 취재 파일을 본인이 직접 당시 전남대방송국 기자로 하신 거죠?
▷ 조규백 : 네.
▶ 김어준 : 이게 어떻게 하다가 40년간이나 사라졌던 겁니까?
▷ 조규백 : 말씀하셨던 대로 전두환이가 1212 군사반란으로 저희 학생들의 희망이 사라졌지 않습니까? 새 학기 들어서 민주화 갈망하는 그 학생들의 요구가 커졌는데 그래서 제가 잠을 안 자고 보름간 취재했던 내용의 테이프입니다. 그런데 제가 81년도에 군입대를 앞두고 이 테이프를 좀 보관을 잘해 줄 사람에게 맡겼는데 한 30년 전에 물어보니까 그 테이프가 없어졌다는 거예요. 그런데 작년에 뉴스 원고, 이 테이프를 배경으로 해서 썼던 원고가 작년에 40년 만에 발견됐고.
▶ 김어준 : 원고가 먼저 발견됐고.
▷ 조규백 : 이게 이제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이걸 보고 비로소 보관하고 계셨던 분이 이것을 아마 그때 취재한 친구가 조규백이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을 찾아 줘야 되겠다 하고 수소문 끝에 제 연락처를 알게 된 거죠.
▶ 김어준 : 그러니까 제가 자료를 좀 뒤져봤더니 5·18 당일 날 취재하러 갔다가 그때 공수부대 연행되셔서 상무대에 구금되셨다면서요.
▷ 조규백 : 예.
▶ 김어준 : 그리고 나서 군에 입대하면서 친구한테 이거 잘 보관해라 했는데 이 테이프가 이제 어떻게 된 연유인지는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돌고 돌아서 어떤 사람이 40년간 가지고 있었던 거네요, 말하자면.
▷ 조규백 : 그렇게 되겠네요.
▶ 김어준 : 돌고 돌아서. 그러다가 작년에 원고, 그러니까 당시 썼던 선생님이 썼던 뉴스 원고 파일을 그분이 보고 이 테이프의 주인이 이 사람이구나, 하고 이게 되돌아왔다?
▷ 조규백 : 그분도 그 당시에 대학교 2학년 보관하고 있는 친구가 박연중 씨라는 분인데 저를 취재 당시의 모습들을 다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친구인데 하면서 전화번호를 수소문했던 거죠.
▶ 김어준 : 그러니까 이 테이프를 군에 가시면서 이제 나중에라도 쓸 일이 있을 테니까, 생생한 현장의 기록이니까 보관해 달라고 했는데 그분이 또 누군가 안심할 사람한테 또 맡기고 그분이 또 다른 사람한테 맡기고 이렇게 된 거겠죠, 아무래도?
▷ 조규백 : 아마며 그렇게 추측이 됩니다.
▶ 김어준 : 그래서 군 갔다 왔더니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 40년 만에 되돌아왔다.
▷ 조규백 : 예.
▶ 김어준 : 자, 당시 이 테이프를 들으면 더 생생하실 것 같은데 사흘 동안 전남도청 분수대 앞에서, 사진으로도 많이 남아 있는데. 그런데 이렇게 오디오가 생생한 건 선생님 파일이 거의 유일하거든요. 그때 당시 상황을 잠깐 되돌아보면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 조규백 : 그때 전두환 신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이것은 광주 전남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대학생의 시위가 이어졌습니다. 그것은 민주화를 갈망하는 우리 대학생들의 전 국민의 요구였는데 80년 5월 들어서면서 정권을 장악하려는 시도가 명백히 가시화됐던 그런 상황입니다. 왜냐하면 테이프에 녹취되어 있죠. 5월 10일부터 최규하 대통령이 중동 순방 계획이 있었는데 그 틈을 이용해서 큰 군사정변이 일어날 것이다, 이런 것들을 계속해서 가두 진출해서 우리 광주 시민들에게 14일부터 알렸던 것입니다.
▶ 김어준 : 갑자기 해외 순방 소식이 그때 잡혔죠.
▷ 조규백 : 예, 맞습니다. 저도 왜 갔는지 모르겠어요.
▶ 김어준 : 왜 지금 갑자기 해외 순방이냐, 이 시국에. 그래서 아, 해외 순방 간 사이에 그런 큰일을 벌일 것 같다는 그런 정세 분석을 당시에 대학생들이 했던 것이고.
▷ 조규백 : 맞습니다.
▶ 김어준 : 그리고 또 한 가지 제가 인상적인 것은 이 녹음테이프 저희가 튼 부분에도 계속 나옵니다만 계속해서 평화시위, 평화를 주장하거든요. 당시 분위기가 그랬습니까?
▷ 조규백 : 그렇습니다. 그때 이제 故박관현 총학생회장, 고인입니다만 그분의 목소리를 들어 보시면 평화적인 시위, 또 경찰은 저희들이 평화적인 시위를 할 수 있도록 저희를 보호해 줬습니다. 거기 녹음테이프에도 해산할 때 절대 차선이 네 개 차선인데, 광주 금남로가. 두 개 차선은 비워 놔라. 거기는 차량이라든가 광주 시민들이 갈 곳이고 우리 학생들은 두 개 차선만 차지해서 가자. 수많은 학생들이 정말로 흐트러짐 없이 3일 동안 그렇게 시위를 했습니다.
▶ 김어준 : 실제 저도 그 내용은 들어 봤는데 당시 학생회장이 길을 다 막지 마라, 두 개 차선은 시민들이 다녀야 하니까. 그리고 경찰과도 그 이야기가 다 됐다. 그런 내용이 나와요, 실제.
▷ 조규백 : 네, 맞습니다.
▶ 김어준 : 그러니까 당시 신군부가 도시 질서가 회복하기 위해서 지금 폭력사태가 나서 폭도들에 의한 소요가 있어서 진압한다는 건 거짓말이었던 거예요, 완전히.
▷ 조규백 : 그렇죠. 이미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장본인들이 이미 언론을 장악을 했고, 또 조금 전에 그러한 내용들은 우리 광주 시민은 물론이고 전 국민들은 아예 모르고 있었죠. 저희들이 알렸는데요. 5·18 직후에 뭐라고 보도했습니까? 일부 시민들, 불순분자, 그리고 폭도, 그런 소요 사태, 이렇게 규정해야 자기들이 정당화되는 거잖아요.
▶ 김어준 : 그렇죠.
▷ 조규백 : 그런 쿠데타를 일으킨 그 장본인, 그 사람들의 입맛대로 되지 않으니까 광주 시민을 폭도로 규정했고, 또 폭도라는 단어를 어떻게 하다 보니까 또 빨갱이다, 이렇게 했던 것 아닙니까? 그랬는데 실질적인 폭도는 누구예요? 별 두 개짜리가, 전두환이가 별 네 개짜리 참모총장을 가뒀지 않습니까? 그리고 대통령을 위협했지 않습니까? 걔네들이 폭도 아닙니까?
▶ 김어준 : 그래서 저는 이 녹음테이프가 사료적 가치도 굉장히 높다고 소개하는 게 끊임없이 이 시위를 주도하는 분들도, 그리고 시민들도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된다는 이야기를 계속 합니다, 실제
▷ 조규백 : 맞습니다.
▶ 김어준 : 그게 생생하게 담겨 있고 녹음테이프 보관 상태가 아주 좋아요. 잘 보관했나 봅니다.
▷ 조규백 : 감동했습니다. 원본 그대로예요.
▶ 김어준 : 그러게요. 늘어지지도 않고 아주 생생하게 잘 들리는데. 그런데 테이프 내용 중에 보면 취재하신 내용으로 보이는데 학교를 지키는 경비원들과 인터뷰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군인들이 들어왔다, 학교 내에.
▷ 조규백 : 그렇죠.
▶ 김어준 : 그런데 이게 진압하기 전의 이야기거든요. 그러니까 군인들이 학교를 진압하려고 사전에 탐문한 흔적인지. 정황을 좀 설명해 주십시오.
▷ 조규백 : 그게 연구 대상이겠죠. 저희가 제가 이제 한 14일 정도 5월 초부터 귀가를 하지 않고 또 저를 도와주기 위한 엔지니어, 기술부 애들하고 같이 저녁에 잠을 잤는데 갑자기 12시쯤 넘어서 전화가 온 거예요. 인터폰이 바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경비실이죠. 수위실. 거기에서 전화가 온 거예요. 이런 상황이다. 군부대가 지나갔다.
▶ 김어준 : 군부대가 왔다.
▷ 조규백 : 예. 그래서 바로 또 취재 수첩을 가지고 메모를 했는데 그 취재 수첩을 제가 분실을 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제 그다음 날 아침에 우리 3학년 선배 기자가 학교 등교를 해서 이런 상황을 제가 설명을 했어요. 그래서 역시 본능적으로, 기자의 본능이죠. 그 큰 녹음기가 들고 가서 직접 질문을 하는 거죠. 도대체 왜 열어 줬느냐, 문을. 그때가 밤 11시 40분인데 5월 15일 11시 40분에서 12시, 이때쯤이에요, 정확하게 시간대가. 왜 문을 열어 줬느냐, 군인 인원이 몇 명이나 되느냐 그랬더니 지프차가 5대, 그리고 트럭이 3대, 거기 지휘관이 최고 높은 계급장이 중령이라 이거죠. 그리고 대위도 보이더라 이거죠. 이런 내용을 그대로 녹취를 했습니다. 저희가 그 상황이 5월 15일 자정입니다. 이미 군인들은 전남대학교를 점령할 계획을 잡고 있었습니다.
▶ 김어준 : 그러니까 그런 이야기들이 있었죠. 이번에 진상조사위에도 나온 내용인데 5·18 이전에 이미 공수부대는 광주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우연치 않게도 전남대에서 당시 먹고 자고 하시던 선생님에게 경비원들이 왜 군인들이 왔죠, 학교에? 라고 연락을 하면서 그때 당시 경비원들 인터뷰를 따면서 그 정황이 담긴 거군요.
▷ 조규백 : 그렇습니다.
▶ 김어준 : 굉장히 생생한 사료인데.
▷ 조규백 : 그렇습니까?
▶ 김어준 : 생생한 사료죠. 5·18 이전에 이미 군부대가 학교를 야밤에 군인들이 왔다 갔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중령, 대위가.
▷ 조규백 : 그렇죠. 트럭 3대에 군인들이 다 찼더라, 이 이야기까지 녹취가 되어 있죠?
▶ 김어준 : 아마 이제 실제 작전이 벌어지면 어떤 식으로 배치할 건지 미리 보러 왔다.
▷ 조규백 : 아, 그랬을까요?
▶ 김어준 : 이렇게 추정되기도 하는데. 그 내용이 이제 3시간에 거의 다다르기 때문에. 시민들의 인터뷰도 많이 따셨더라고요.
▷ 조규백 : 네.
▶ 김어준 : 그런데 졸업하고 나서는 기자가 되신 건 아니죠?
▷ 조규백 : 제가 5월 18일 날 공수부대하고 맞닿는 순간에 그 꿈이 무너졌습니다. 지금은 또 기자 역할을 하고 있네요.
▶ 김어준 : 지금 40년 만에 40년 전으로 돌아가서 당시 취재하셨던 걸 지금 푸시는 건데, 말하자면.
▷ 조규백 : 예, 맞습니다.
▶ 김어준 : 5·18 당일 날 바로 연행되신 기록이 있더라고요.
▷ 조규백 : 5월 18일 날 저녁 무렵에 계엄군하고 부딪혀서.
▶ 김어준 : 그때 혹시 계엄군한테 마이크를 들이대신 것 아닙니까?
▷ 조규백 : 아, 그때요. 그러니까요. 한번 해 볼 뻔했는데. 지금이라면 했을 것 같아요.
▶ 김어준 : 알겠습니다. 저희 오늘은 여기까지 듣고요. 할 이야기가 많으신 것 같습니다. 저희도 이 3시간을 다 분석하지는 못했는데 좀 더 분석해서 선생님 한번 스튜디오에 모시겠습니다. 오늘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 조규백 : 예, 감사합니다.
▶ 김어준 : 네, 감사합니다.
▷ 조규백 : 예, 수고하세요.
▶ 김어준 : 41년 만에 5월 14일부터 16일까지의 집회 상황을 직접 취재하셨던 조규백 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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