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제1공장] -전화연결
10.29 참사 유가족이 말하는 그날.. 그 이후
- 송진영 씨 (故 송채림 씨 아버지)
▶ 김어준 : 10.29 참사 오늘이 한 달이 됐습니다. 지난주 화요일 유가족들이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서 입장을 밝혔죠. 유가족 한 분 오늘 연결해 보겠습니다 故송채림 씨의 아버지 송진영 씨 전화 연결돼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 송진영 : 네, 안녕하세요.
▶ 김어준 : 어려운 결정 인터뷰에 응해 주신 거 감사드리고요. 먼저 이 인터뷰에 응하신 이유부터 제가 좀 여쭤봐야 되겠습니다. 어려운 결정이실 것 같았는데.
▷ 송진영 : 저도 민변의 도움으로 15일 날 유족들을 만나기 전까지 혼자 버티고 있었던 그 시간이 너무 힘들어서 지금 아직도 나오지 못하고 있는 다른 유족들, 혼자 계신 유족분들 이 방송이라도 듣고 좀 같이 나와서 위로받고 이런 기회가 됐으면 해서 결정을 했습니다.
▶ 김어준 : 그렇군요. 지난 한 달 가까이 이제 다른 유족들과 연락 방법도 없고 혼자 계셨는데,
▷ 송진영 : 저도 어떻게 유가족분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을까 하고 많이 찾아봤는데 없더라고요, 연결되는 공간이. 지금도 인터넷상에 검색창에 띄워 봐도 10.29 관련해서 연결되는 공간 자체가 없어요.
▶ 김어준 : 그렇죠. 유가족들을 위한 사이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추모 공간이 따로 온라인에 있는 것도 아니고 없죠. 없다보니까 혼자 굉장히 고통스러우셨고, 그런데 마침 민변에서 유가족들의 요청으로 그런 모임을 만든다는 걸 알고 모이셨고 그래서 아직도 혼자 있는 분들에게 혼자 있을 필요가 없다고 알려 주시기 위해서 인터뷰에 응하신 거라는 말씀이잖아요. 그렇죠?
▷ 송진영 : 네.
▶ 김어준 : 지금은 그러면 민변을 통해서 서로 연락처를 공유하게 된 유가족들이 만든 단톡방 같은 게 있습니까?
▷ 송진영 : 예, 지금 이제 유가족 단톡방이 있고요. 그 단톡방은 민변이나 이런 변호사들도 하나도 접근을 할 수가 없어요. 저희 오로지 유가족들끼리만 공간을 공유하고요. 지금 어제까지 유가족 기준 63분 들어와 계세요.
▶ 김어준 : 그럼 아직도 한 80~90여 분은 전혀,
▷ 송진영 : 그렇죠.
▶ 김어준 : 이 단톡방이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여기 접근도 못 하고 계신 거네요. 그렇죠?
▷ 송진영 : 그렇죠.
▶ 김어준 : 자, 차근차근 여쭤보겠습니다. 참사 직후에 명단 공개를 두고 “명단 공개는 패륜이다.”라고 하는 정부 입장이있었고 민들레라고 하는 한 인터넷 매체에서는 명단을 공개하기도 했는데 그러자 또 비판도 꽤 있었습니다.
▷ 송진영 : 네.
▶ 김어준 :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명단 공개에 대해서?
▷ 송진영 : 저희 단톡방에서도 민들레 명단 공개 가지고 이야기가 참 많았어요. 그런데 저 개인적인 생각은 명단 공개는당연히 해야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전에 보면 10.29가 아니고 그전에 세월호나 씨랜드, 서해대교 이런 대형 참사들 있을 때 보면 기자들이 아니면 방송에서 가장 먼저 취재해서 올리던 게 피해자 신상이 아니었습니까?
▶ 김어준 : 그랬죠.
▷ 송진영 : 이름, 나이, 성별. 항상 먼저 그거 내보내려고 취재하고 그러고 다니지 않았나요?
▶ 김어준 : 그랬죠, 항상.
▷ 송진영 :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무슨 잘못이 있어서, 무슨 죄를 지어서 이름도 하나도 밝히지 못합니까? 저는 우리 아이가 이름이 밝혀지고 사람들한테 오래오래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요. 그래서 명단 공개를 저는 단톡방에다 제가 먼저 우리 아이 사진을 올리고 ‘내 딸 송채림입니다’ 하고 먼저 올렸어요. ‘왜 공개 못 합니까?’ 하고. 그랬더니 동조해주시는 많은 분들이 같이 또 사진 올리시고 해서 같이 공유하고 이렇게 했거든요. 물론 공개 원하지 않으시는 분들은 당연히 존중받아야 되고요. 대신에 공개를 원하는 분들의 뜻도 있잖아요. 공개를 원하는 분들의 뜻도 존중받아야 되는 게당연한 거 아닙니까?
▶ 김어준 : 그렇죠.
▷ 송진영 : 저는 민들레 그거 나왔을 때 일부 법적으로 고소를 하니 어쩌니 이렇게까지도 이야기가 있었는데 저는 민들레가 이름을 그렇게 공개해 주지 않았다면 우리 애들의 이름은 세상에 못 나올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되고요. 민들레가 분명히 유족의 동의 없이 공개한 것은 사과해야 합니다. 절차가 잘못됐고요. 하지만 저희한테는 일부 큰 도움이 됐다는 것도사실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 김어준 : 알겠습니다. 영정과 위패가 없는 분향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송진영 : 그거는 말할 필요도 없어요. 아무것도 없는데 거기 가서 누구를 위해서 절을 하고 누구를 위해서 추모를 하고뭐를 합니까? 집에서 제사를 지내도 위패 안 놓고 지내는 제사가 있나요? 너무 어이없는 일을 지금 정부가 하고 있는 겁니다, 그거는.
▶ 김어준 : 선생님도 다른 유가족과 연락을 주고받고 싶다고 정부 기관에 다른 유가족의 연락처를 요청하신 적 있습니까?
▷ 송진영 : 저는 제가 직접 해 보지는 않았고요. 지금 단톡방에 이렇게 올라와 있는 것 보면 개인 정보 유출이라고 전부다 거절당했다는 이야기들이 있더라고요.
▶ 김어준 : 선생님은 직접 요청하지는 않았지만 요청했던 다른 유가족들은 다 거절당했다?
▷ 송진영 : 네, 그리고 이제 어느 분이 머리를 짜내서 ‘그러면 내 정보를 그쪽에 연락을 해 줘라, 내 정보를 그쪽에 줘라’ 이렇게 해서 받으신 분이 있어요. 거꾸로.
▶ 김어준 : 그러니까 달라고 하면 안 주니까 그러면 내 정보를 그쪽에 전달해 달라고 요청하셔서 그쪽에서 받은 경우는하나 있는데 달라고 했을 때는 안 주더라.
▷ 송진영 : 네, 방식을 그렇게 우리가 하자고 같이 공유하고 그랬죠.
▶ 김어준 : 그럼 처음에 어떻게 만나시게 된 겁니까, 다른 유가족들을?
▷ 송진영 : 저희는 저도 계속 찾아 헤매고 하다가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하고 하다가 민변하고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 한것을 봤어요. 거기서 보고 참여연대에다가 문자를 보냈더니 답장이 와서 거기 사무총장님이 소개를 해서 민변에 연결이돼서 유가족들을 처음에 만나게 됐죠.
▶ 김어준 : 그렇군요. 선생님도 이제 먼저 민변을 찾아갔던, 처음에 민변을 찾아간 것도 유가족들이 먼저 찾아갔다고 하던데, 찾아갔던 어떤 분이 만들어 낸 계기로 인해서 이제 모임을 알게 되셨고 거기에 참여하게 되신 거고. 자, 다른 유가족들을 만나는 게 선생님에게 도움이 됩니까?
▷ 송진영 : 사실 장례 치르고 그 이후로도 주변에서 많은 이야기, 좋은 이야기들을 해 주시는데 전혀 사실은 남들이 하는이야기는 위로가 안 돼요. 오로지 지금 그 공간 안에서 저 말고 저보다도 더 참 애달픈 사연들이 너무 많아요. 그 사연들을보고 서로 위로해 주고 이렇게 하는 게 사실 지금은 그것밖에는 위로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저도 그래서 하루 종일그 톡 안에서 울고 위로하고 그러면서 지금 보내고 있습니다.
▶ 김어준 : 따님 이야기도 잠깐 해 볼게요. 故송채림 씨는 몇 살이었습니까?
▷ 송진영 : 우리 채림이는 2002년 월드컵둥이고요. 우리 나이로는 21살. 지금 월드컵 열리니까 만 20세죠.
▶ 김어준 : 보내 주신 사진 저희가 봤거든요. 그리고 방송으로도 내보냈고 또 내보낼 텐데 보니까 옷 입는 감각이 아주 예사롭지 않더라고요.
▷ 송진영 : 저희 아이는 패션 디자이너가 꿈이었어요. 그래서 고3 때 서울에서 패션스쿨에 가서 공부를 좀 하고 작년에는웨딩숍에서 일하다가 올해 대전 내려와서 자기가 쇼핑몰을 하나 만들어서 쇼핑몰을 지금 운영하고 있었고요. 집에서 항상 그림도 그리고 도예 공방 가서 도예 공부도 하고. 자기 하여튼 하고 싶은 게 꿈이 많았던 애고요. 얘가 거기 지금 보내드린 사진에 저는 눈에 안 보이니까 모르겠는데 한복 사진은 얘가 직접 디자인해서 만든 거고요. 수상 경력까지도 있고요.
▶ 김어준 : 참사 당일 날 소식은 어떻게 전달받으셨습니까?
▷ 송진영 : 저는 같이 올라갔던 친구들한테 연락을 받았어요. 당시 친구들이 저도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때 당시 이미 사망한 상태였더라고요.
▶ 김어준 : 연락을 처음 받으셨을 때는 그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이미 사망한 이후였나요?
▷ 송진영 : 네, 그래서 이제 아이들한테 전화를 받고서 이제 도저히 운전은 못 할 것 같고 그래서 첫차를 끊어 놓고 기다리면서 아이들한테 계속 전화를 했죠. 그랬더니 아이들이 채림이를 잃어버렸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있나. 경찰에 가서 물어보면 사태가 중하니까 분명히 얘가 어디 있을 거다, 어디에 있을 거라고 안내해 줄 거다, 가서 물어봐라, 물어봐라.
▶ 김어준 : 어디로 실려 갔긴 실려 갔는데 어디로 갔는지 몰라서 잃어버렸다고 표현했군요.
▷ 송진영 : 아니, 얘들이 경찰들이 조치에 의해서 우리 채림이하고 이탈이 됐어요. 그러니까 귀가 조치가 된 거죠. 강제귀가 조치가 되면서 채림이를 어디 갔는지 못 찾은 거예요, 그 이후로.
▶ 김어준 : 같이 있었던 친구들인데 채림이는 어떤 병원으로 실려 갔는데 그때 이 친구들은 강제 귀가 조치가 됐어요?
▷ 송진영 : 네.
▶ 김어준 : 왜 그랬을까?
▷ 송진영 : 저도 이게 이해가 안 돼요. 우리 애가 거기서 그때 사망을 했는데 친구들이 그렇게 보면 유일한 연고자가 되잖아요.
▶ 김어준 : 그렇죠. 보호자나 연고자 역할을 했어야 할 것 같은데.
▷ 송진영 : 예, 그런데 그 연고자를 쫓아내고서 무슨 조치를 어떻게. 나는 절대로 이게 이해가 안 돼요.
▶ 김어준 : 어디에 시신이 안치돼 있었습니까?
▷ 송진영 : 그렇게 하고서 12시간이 지나서 송탄에 있다고 연락이 왔어요. 송탄 장례식장에.
▶ 김어준 : 멀리 갔네요. 12시간 후에 사망 소식으로 들으신 거네요, 처음에.
▷ 송진영 : 네, 그렇습니다.
▶ 김어준 :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생사를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네요.
▷ 송진영 : 그렇죠.
▶ 김어준 : 그리고 계속 전화나 문자 하셨을 것 아닙니까?
▷ 송진영 : 저는 그러니까 서울에 처음 가서 했던 거는 우리 애 채림이 전화기 위치 추적을 부탁을 했어요, 경찰서에 가서. 경찰서에서 위치 추적을 하니까 용인으로 나오더라고요, 그 시간에. 제가 첫차 타고 서울 올라갔으니까 한 새벽 6시정도 됐을 거예요. 용인으로 나왔는데 휴대폰을 저는 그래서 누가 주워 간 줄 알았어요. 서울에 여기 있을 애가 용인에 전화기가 나오니까 누가 주워 간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전화기는 우리 채림이한테 있더라고요. 그런데 만약에, 그냥 이것도 이해가 안 되는 게 저희가 엄청나게 전화를 하고 문자를 하고 친구들도 계속 하고 경찰서에서도 위치 추적 부탁했으니까 하고 했는데 12시간 동안 전화 한 통 받아 주는 사람이, 문자 한 번 확인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그렇게 안 했으면 우리 채림이는 용인을 통해서 송탄에 가 있을 이유가 없잖아요. 제가 가서 바로 데리고 갔을 텐데.
▶ 김어준 : 아마도 이제 안치할 곳이 부족해서 여기저기 돌다가 송탄까지 간 것 같긴 한데. 12시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설명을 들으셨습니까, 나중에?
▷ 송진영 : 아니요.
▶ 김어준 : 못 들으셨어요?
▷ 송진영 : 전혀요. 그 안에 그 이후로도 거기에 우리 채림이가 어떤 경로를 통해서 거기를 가게 됐는지 누구도 이야기해주는 사람도 없고요.
▶ 김어준 : 혹시 발인한 이후에 정부 기관으로부터 어떤 연락 받으셨어요?
▷ 송진영 : 발인 전에 장례를 치를 때는 여기 기관장님들도 와서 조문하시고 담당관이라고 와서 명함 주고 전화 통화도몇 번 하고 했었는데 발인 이후에는 누구도 연락 온 적도 없어요. 우리 아기, 큰애가 좀 안 좋아서 센터에 들어가서, 무슨센터지.
▶ 김어준 : 원스톱지원센터라고 있는데.
▷ 송진영 : 예, 가서 조금 한번 면담을 했던 적은 있는데, 저희가 찾아가서. 어디에서도 연락 온 적 없어요. 그리고 그건저만이 아니고 저희 카톡방 안에 이렇게 보면 다 똑같으세요. 연락을 받으신 분이 없어요, 발인 이후에. 어떤 조치도 없었어요.
▶ 김어준 : 알겠습니다. 선생님 입장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정부에서는 보상 이야기도 하고 지금,
▷ 송진영 : 보상 이야기를 하면 이게 나는 해도 해도 너무한다고 생각하는 게 장례비 1,500만 원 달라고 했던 유족들 단한 명도 없어요. 그리고 저희 유가족 단체에서 기자회견하고 나니까 그다음에 나온 답변이 보상이에요. 저희가 언제 나라에다 돈 달라고 그랬습니까? 예? 우리 애들 지금 심지어 마약 먹고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이런 오명들 좀 벗어 주고우리 애들 온전히 기억되고 추모될 수 있는 공간 하나 마련해 달라. 지금 저희가 원하는 건 그거예요. 세월호 같은 경우는같은 학교 출신이고 해서 같은 대부분 지역 사람들이라 소통이 원활하고 추모도 쉽지만 저희는 전국에 다 흩어져 있어요. 사연도 다 제각각이에요. 이 사연을 같이 모아내는 데도 굉장히 사실은 어려울 거예요.
▶ 김어준 : 선생님, 저희가 오늘은 시간이 다 됐는데요. 저희가 한두 가지 질문이 더 있어서 내일 다시 한번 연결할게요, 추가로.
▷ 송진영 : 네, 알겠습니다.
▶ 김어준 : 자, 오늘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故송채림 씨의 아버지 송진영 씨였습니다. 내일 다시 한번 연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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