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살롱]
‘10.29 참사’ 그리고 1년… 우리에게 남긴 것. 참사 희생자들에게 바치는 추모의 시 한 편.
이스라엘 시오니스트는 왜 ‘시오니즘 나치’가 되었나?
▷전우용 / 역사학자
▷김태형 / 심리학자
▷류근 / 시인
▷강유정 / 인문학자
김어준 : 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험한 코너. 언젠가 이분들도 압수수색 당하겠죠. (웃음) 전우용, 김태형, 류근, 강유정 네 분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김태형 : 안녕하십니까.
▣강유정 : 안녕하세요.
▷전우용 : 압수수색 얘기해놓고 안녕하냐고 묻는 건 또 뭐예요?
김어준 : (웃음) 아직 안 들어왔으니까 당분간은 안녕할 예정입니다. 자, 오늘 10.29 참사, 이태원 참사 얘기를 먼저 해볼까합니다. 왜냐하면 이틀 후면 1년이거든요. 세월이 참 빠릅니다. 1년인데 엄청나게 충격적인 사건인데 세월호하고 또 다른 의미에서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거기는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큰 배이긴 하지만 바다라는 환경 자체가 위험이 있잖아요. 이거는 그냥 도시 한가운데서, 우리가 매일 지나다니는 아무도 사고가 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대한민국 수도의 큰 누구나 가는 곳에서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망했는데 아직도 누가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방조했거나 또는 그 책임자가 명확하게 지목되지 않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모른 척하고 있고, 여기 안 간다고 하고요, 추도식에. 자, 세월호가 엄청 큰 상처를 우리한테 남겼거든요. 아직도 세월호 얘기하면 울컥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이 10.29가 우리한테 남긴 게 우리 정서에, 정신에 남긴 게 뭘까요?
▷전우용 : 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김어준 : 네.
▷전우용 : 여기서부터 얘기를 시작해보죠. 국립현충원에 무명용사 묘역이 있어요. 근데 그 이름을 지을 때부터 비판이 제기됐어요. 세상에 이름 없는 사람이 어디 있냐. 무명용사가 있는 게 아니라 그들을 기억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그들을 이름 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린 것이 산 자들의 책임인데 그 사람들한테 책임을 묻는 그런 명명이다. 그런 작명이다. 그렇게 이름 지으면 안 된다는 얘기가 있었어요. 이 사건에 대해서도 1년이 지났는데 저는 같은 생각이 들어요. 우리 역사상 합동분향소라는 게 처음 만들어진 건 1982년 우범곤 총기난사 사건 때였어요. 그때 한 마을에서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에 합동분향소를 마을회관에 만들었는데, 그 합동분향소의 역할은 뭐였냐면 첫 번째로는 이제 같은 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 유족들을 위로하고, 서로 위로할 수 있게 하고 그들이 함께 대책을 논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첫 번째였고요. 두 번째로는 이 합동을 만들면서 이제 공동체가 이 일에 대해서 책임을 느낀다는 것을 표시하는 거였어요. 그리고 제가 다 조사해봤어요. 근데 그러다 이제 너무 많아서 1987년부터만 조사를 했는데 87년 10.29 이태원 참사 때까지 합동분향소가 총 197차례가 만들어졌어요. 뭐 이제 그중에는 아웅산 테러 아니면 KAL 폭파 사건 뭐 이런 사건들도 있고. 아까 말씀하셨듯이 세월호 참사 아니면 장성 요양원 등 숱한 사건들이 있는데, 그동안에 그 197차, 뭐 앞에 거까지 하면 200개가 넘겠죠. 영정과 위패가 없는 분향소는 단 한 번도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김어준 : 그렇죠. 영정과 위패가.
▷전우용 : 2002년 군산 유흥업소 화재, 2005년에 이제 미아리 집창촌 화재가 있어서 성매매 여성들이 참변을 당했는데 그때도 위패들은 다 만들었어요. 그러니까 한 번도 우리가 거기에 대해서 개인정보 유출이다, 망자와 또는 유족들에 대한 2차 가해다.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김어준 : 그러니까 망자, 위패를 2차 가해라고 했었죠, 2차 가해. 이름을 공개하는 것을.
▷전우용 : 근데 처음이었어요.
김어준 : 처음이죠.
▷전우용 : 합동분향소라는 것을 만들어놓고 위패도 영정도 없이 꽃만 갖다 놓고 거기다가 분향하게 하고 대통령이 앞에 서서 고개 숙이는 일종의 좀 퍼포먼스만 한 이런 식의 합동분향소는 처음 만들어진 거죠.
김어준 :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겁니다.
▷전우용 : 처음 만들어졌는데. 그런데 그때 어떤 얘기들을 우리 언론하고 일부 진보 정당에서 했냐면, 거기는 이제 그러고 나니까 일부 언론에서 그 시민 언론에서 명단을 공개하고 사제단에서 추모 기도회를 하면서 이름 부르고 그랬는데 그거를 개인정보다, 2차 가해다 그러면서 비난하기 시작했어요. 처음 있었던 일이죠, 이것도. 그게 왜 2차 가해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게 뭐 유족들에게 도움이 안 된다는 둥 이렇게 비난을 하기 시작해서 마치 사실인 것처럼 유포됐었고. 심지어는 그걸 보도한 언론사가 압수수색을 당했죠. 경찰이 압수수색까지 했었고. 정말 이제 새로운 현상이 이 정권 들어와서 벌어지고 있는 거잖아요. 세월호 참사 났을 때 SNS에 그런 이야기가 이제 떠돌았죠. 떠돌아다녔어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는데, 우리 사회가 진보와 보수로 나뉜 줄 알았는데 세월호를 겪어보니 인간과 짐승으로 나뉘더라. 이런 얘기를 했단 말이에요. 이 지금 1년이 지났을 때 지금 이태원 10.29 참사와 관련해서는 1년이 지났는데 보통 1년이 지나면 뭘 이제 언론들이 보여주냐면, 다른 사건들에서도 마찬가지에요. 합동분향소 사진을 보여줘요. 다시 실어주고 이들을 잊지 맙시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지금 우리는 이 사건에 관해서는 희생자들을 애초에 없었던 존재. 무명의 인물들, 애초에 없었던 존재로 아예 만들어버렸어요. 우리 언론이, 우리 사회가, 우리 사회 일부 지식인들이, 이 정권이 피해자들을 아예 없었던 존재처럼 만들어버렸어요. 그래서 지금 1주년이 돼도 희생자 명단을, 희생자 사진을 다시 볼 수가 없고 그들에게 잊지 않겠습니다, 라고 약속하기도 어려운 이런 형편이 돼 버렸죠. 그래서 이 참사 1주년이 우리한테 남긴 과제가 뭐냐.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지난 1년간 또는 그보다 세월호 이후로 8년간 우리가 사람다움에 더 가까워졌는가? 아니면 짐승 같음에 더 가까워졌는가? 이걸 자문해보게 만드는. 이제 그리고 여기에 대한 답을 찾으라고 이야기하는 그런 사건이다, 라고 생각을 합니다.
김어준 : 자, 김태형 소장님.
◉김태형 : 네. 이 10.29 참사는 세월호 참사가 남긴 상처, 그러니까 치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또 발생한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다쳐서 상처가 있는 곳이 아직 아물지 않았는데 또 거기에 상처가 생긴 격이거든요. 그래서 훨씬 더 한국사회와 한국인에게 심각한 충격을 주고 있다, 라고 생각을 하고요. 그 저는 세월호 참사 때에도 얘기했지만 네 가지 정도의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이런 인재, 사회적 참사의 경우에. 그 첫 번째는 슬픔입니다, 슬픔. 아까도 말씀하셨지만 세월호나 이 10.29 참사 사진만 봐도 지금도 울컥하는 분들이 많잖아요. 마음속에 슬픔이 고여서 빠져나가질 못 하는데 그 이유는 왜? 애도를 하지 못 했기 때문입니다. 애도를 해야 슬픔이 빠져나가는데 정부가 애도를 방해했어요,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래서 이 슬픔을 마음속에서 빼내지를 못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우리 한국인들이 가슴속 깊은 곳에 슬픔을 한 덩어리씩 안고 지금 신음하면서 살고 있다, 라고 생각을 하고요. 그다음에 두 번째는 당연히 불안과 공포 두려움을 전 사회에 만연시켰죠. 뭐 말씀하셨듯이 배가 침몰한 것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백주대낮에 길거리에서 사람이 이렇게 죽어나가는 걸 겪으면서 한국 사람들은 그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다, 라는 이런 두려움을 갖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에는 뭐 축제가 벌어져서 사람이 많은 곳 갈 때 두려움을 느낀다는 사람이 많아요. 이런 이제 하나의 불안과 공포를 한국사회에 만연시켰다는 게 있고. 그다음에 극심한 무력감을 초래했습니다, 사람들 속에서. 왜냐하면 문제를 해결하지 못 했기 때문에. 애도가 성공하려면 사회적 참사의 경우에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 이런 게 나와서 다음번에는 이러한 참사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혹시 발생하더라도 우리가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되는데. 두 참사 모두 지금 해결이 안 됐기 때문에 사람들은 앞으로 이런 재난이 발생해도 내가 이걸 통제할 수 없을 것이다. 무력감이죠. 이런 것들이 생기면서 한국 사회가 이런 무력감 속에 휩싸이게 되면 국가나 사회 공동체에 대한 불신이 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뭐 국가가 나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그래서 이게 나라냐, 라는 말까지 나왔던 건데요. 이러한 심리가 각자도생의 이기주의, 뭐 국가가 나를 보호해주고 챙겨주지 않으니까 공동체는 챙겨주지 않으니까 그냥 나 혼자 나를 챙기면서 이기적으로 살자 하는 심리. 또 정치적 무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죄책감들이 있죠, 죄책감. 그 이번에 채 상병이 죽은 다음에 그 동료가 고발을 했습니다.
◍류근 : 네.
◉김태형 : 그게 죄책감이 크거든요. 자기가 손을 잡았으면 살릴 수 있었다. 사실 그 사람이 죄책감을 떠안을 일은 아니죠. 국가가 죄책감을 가져야 될 일인데 세월호나 이태원이나 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우리 책임을 느끼는 거 같아요. 애들을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뭐 또 조금 더 근본적으로 들어가면 이 끔찍한 세상을 만드는 데 나도 방관자다. 또는 일조한 측면이 있지 않느냐. 이런 죄책감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죄책감을 또 한국 사람들이 떠안게 만든 것이 10.29 참사다. 이제 이러한 참사는 부정적으로 이러한 것들이 작용하면 우리 다 우울증에 걸리게 만드는 거고요. 만약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면 사회를 개혁하는 에너지로도 쓰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박근혜 탄핵이 사실은 세월호 참사에서 시작됐다고 봐요. 윤석열 정권의 몰락은 이태원 참사, 10.29 참사에서 시작됐을 것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김어준 : 자, 뒷부분이 좀 위험하네요? (웃음) 자, 강유정 교수님.
▣강유정 : 그 어제 그 두 가지 뉴스가 한꺼번에 떴잖아요? 그 윤, 박정희 서거 44주기 추도식 참여. 현직 대통령 최초, 라는 헤드라인으로 윤 대통령은 그동안 겪으신 슬픔에 대하여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라고 전했다, 라고 뉴스에 실렸어요. 그 1952년생 박근혜 대통령, 전 대통령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44주기인데, 마치 엊그제 겪은 일처럼 그동안 겪으신 슬픔에 대하여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라고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어제 오전에 또 다른 뉴스가 윤 대통령 이태원 참사 1주기 시민추모대회 불참. 이유는 정치적 집회로 변경이라고 되어 있어요. 아마 변질이 더 가까운,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더 가까운 말이겠지만 변경됐다, 라는 거죠. 지금 한쪽에서는 나름의 연대의 손짓을 내민 거고 다른 한쪽은 이를테면 갈라치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문제적인 건 그러면 왜 나름의 연대의 손짓을 내밀었을까? 힘이 남아있다, 라고 판단을 한 듯합니다. 아직 힘이 소진되지 않았다 보니.
김어준 : 박근혜 전 대통령.
▣강유정 : 네네. 소진되지 않은 힘이다 보니까. 그러니까 이 연대도 진심어린 연대라고 보기는 어렵죠. 자, 그렇다면 그건 결국 정치적 행보였다, 라는 건데 모순이 발생하잖아요? 정치 집회라서 참석하지 않겠다, 라는 말 자체도 모순입니다. 그래서 제가 언론에도 굉장히 좀 많이 답답하고 화가 났는데 정치 집회면 왜 안 되는지에 대한 질문들을 하지 않고 그냥 따옴표를 따서 이걸 열심히 나르고 있더라고요. 이렇게 되면 무슨 효과가 발생하냐면 자, 10월 29일 아직 추모 집회는 시작도 안 했습니다만 선제적으로 호명을 한 거예요, 그건 정치 집회다. 이 정치 집회다 라는 호명에 대해서 가만히 있다 보면 결국 그건 선제적 규명이 되고 규정이 되는 겁니다. 마치 작년 10월, 11월 이때쯤 사망했던 그 피해자들의 이름을 부르고 얼굴을 보고 싶어 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범법자가 되는 것처럼 사회를 위축시켰거든요. 굉장히 공포에 떨게 만들었고. 결론적으로 이건 뭐냐면 피해자를 익명화 하면서 피해자 가족을 고립시키는 겁니다. 지금 또 한 번 선제적으로 이렇게 이름을 불러서 고립을 시키고 있는데 무엇보다 저는 꼭 여기서 얘기하고 싶은 건, 왜 우리 사회가 전체 세월호가 되어서 가만히 있냐는 거예요. 대표적으로 파라마운트 플러스에서 이번에 Crush라는 다큐멘터리를 영화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문제적인 건 이것을 수입하려고 했는데 혹은 스트리밍 하려고 했는데 누가 금지하거나 혹은 억압한 게 아니라 아무도 수입하거나 공개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게 저는 더 문제적인 거예요. 그런 소란을 애당초 없앤 거죠. 왜냐하면 아, 이거 원래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건 작년부터, 사건 발생 이후부터 거듭해서 이 문제는 법적인 문제가 있다고 얘기를 했잖아, 라고 하는 이런 학습된 눈 먼 자들의 국가가 이미 되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고. 그래서 정치 집회일 수밖에 없잖아요. 1년 동안 아무런 해결도 안 나고 책임을 묻는 게 정치적인 인간이 할 수 있는 행동이라면. 그거 이유랍시고 얘기를 하고 있는데 그걸 따옴표만 쳐서 전달하고 있는 이 사회가 저는 우리 사회가 지금 전체적으로 가만히 있다 보니 침수되고 있고 그리고 지금 가라앉는 줄도 모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김어준 : 기자들도 무서워서 그래요.
◉김태형 : (웃음)
김어준 : 기자들도. 하도 잡아가니까 무서워서 그래요. 저는 뭐 그 기자들을 뭐라고 하고 싶지는 않은데 강 교수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웃음) 동시에.
◉김태형 : (웃음)
김어준 : 자, 시인의 또 논평을 들어보겠습니다.
◍류근 : 그 죄책감 말씀하셨잖아요. 그러니까 문득 또 독일의 그 유명한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가 생각납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시, 유명하죠? 거기에 보면 나는 다만 운이 좋았던 덕분에 그 숱한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라는 시구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지금 사실은 운이 좋았기 때문에 살아남은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 참혹한 시대에 이 살아남은 것이 더 슬퍼지는 나날이라는 겁니다. 제가 지금 치아 보수 중이어서 길게 말할 형편이 못 되는데 길게 말할 것도 없이 지난 1년간의 보수, 보수 참칭 세력이 그게 이른바 가짜 보수가 권력을 잡으면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나라가 거덜 나고 너덜너덜해진다, 라는 것을 확인하는 1년이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저는 지금 우리 사회가 타인의 슬픔을 받아드리는, 슬픔과 고통을 해석하는 자세조차도 정치적 입장에 따라서 양극화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또 뭐 자신이 마땅히 지켜줬어야 할 자국민의 추모식 조차 정치집회로 몰아가는 국가 지도자의 야만성에 대해서 정말 뭐 서정 시인을 떠나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담한 위기감과 비애감을 느끼게 됩니다. 멧돼지 짬밥만도 못 한 무도한 정치를 용서하기가 참 어려워요. 오늘은 잊으면 절대로 안 되는 것들을 너무나 쉽게 잊고 사는 시대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우리 시대의 죽음, 우리 시대의 이 억울한 비명 소리를 잊지 말자는 뜻에서 10.29 용산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시 한 편을 읽고자 합니다. 추모 시는 물론 저도 썼습니다만, 제 시를 여기서 읽는 건 반칙이니까 우리 시대 생명의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이문재 시인의 시를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옷 발음 어렵다는 걸 좀 참고 해 주십시오. 이제야 꽃을 든다. 이문재. 이름이 없어서 이름을 알 수 없어서 꽃을 들지 못했다. 얼굴을 볼 수 없어서 향을 피우지 않았다. 누가 당신의 이름을 가렸는지 무엇이 왜 당신의 얼굴을 숨겼는지 누가 애도의 이름으로 애도를 막았는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었다면 당신의 당신들을 만나 온통 미래였던 당신의 삶과 꿈을 나눌 수 있었다면 우리 애도의 시간은 깊고 넓고 높았으리라.
▷전우용 : 아, 제가 대신 읽을까요?
◍류근 : 감사합니다.
▷전우용 : 우리 류근 시인이 시인다운 서정이라. 이제야 꽃 놓을 자리를 찾았으니 우리의 분노는 쉽게 시들지 않아야 한다. 이제야 향 하나 피워 올릴 시간을 마련했으니 우리의 각오는 쉽게 불타 없어지지 않아야 한다. 초혼이 천지사방으로 울려 퍼져야 한다. 삶이 달라져야 죽음도 달라지거늘. 우리가 더불어 함께 지금 여기와 다른 우리로 거듭나는 것, 이것이 진정 애도다. 애도를 기도로, 분노를 창조적 실천으로 들어 올리는 것, 이것이 진정한 애도다. 부디 잘 가시라.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꽃을 든다. 부디 잘 사시라. 당신의 당신들을 위해 꽃을 든다. 부디 잘 살아내야 한다. 더 나은 오늘을 만들어 후대에 물려줄 권리와 의무가 있는 우리 모두를 위해 꽃을 든다.
김어준 : 자, 우리 류근 시인께서 갑자기 울컥하셨나 봐요. 시인 감수성은 따로 있나 봅니다. 자, 이것도 슬픈 이야기인데 짧게 할게요, 짧게. 시간 더 많이 있다고 해서. 이스라엘이 자기들이 겪은 일을 팔레스타인한테 고스란히 똑같이 하고 있잖아요. 이게 어떻게 가능하죠?
▷전우용 : 일단 저는 주어를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거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를 않아요.
김어준 : 그렇다면?
▷전우용 : 이스라엘 정부가 또는 이스라엘 우익 정부가, 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죠.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고요.
김어준 : 맞습니다.
▷전우용 : 이거가 해방 직후에 김구 선생이 그런 이제 나의 소원에서 그런 구절을 남겼어요. 우리가 남의 침략으로 가슴 아팠기에 남을 침략하지 아니한다. 침략하려하지 아니한다. 그러니까 그런 정도의 생각을 갖는 것이 우리가 보편이고 상식이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남에게 당했으니 나도 남에게 더 심하게 해야 되겠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어요. 대체로 이제 특히 현대사회에서 극우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태도가 혐오감을 동원하고 정치에. 그리고 타인의 생명을 절대로 존중하지 않고 이런 태도들을 늘 보여왔거든요. 히틀러가 바로 그런 존재였었고요. 그리고 지금 이제 이스라엘을 만든 시오니스트들 자체가, 시오니즘 자체가 배타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극우적 사고이기 때문에 극우 정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비슷한 양상들을 보여요. 힘의 우위를 굉장히 강조하고 또 일단 그 확보한 힘의 우위를 통해서 상대의 입을 틀어막고 몸을 꼼짝 못 하게 묶어두는 것을 평화라고 주장하고 이스라엘이 지금 저 팔레스타인에서 자행하고 있는 행위들도 일종의 이제 평화를 위한 거라고 이제 자기들은 얘기를 하잖아요, 그게 정의라고 생각을 하고. 그리고 심지어 병원을 폭격하는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 이제 극우 인사들이 구경, 영화 보듯 구경을 하고. 이런 현상들에 대해서 판단해야 될 게 뭐냐 그거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나타나는, 분쟁에서 나타나는 또는 이스라엘 정부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현대 한국의 이른바 혐의를 동원하고 인간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이런 정권 전체의 모습을 이스라엘이 앞서서 보여주는 것이다 이스라엘 정부가,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김태형 : 학대나 박해를 당했을 때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로는 그렇게 당해서 자기가 고통을 겪었으면 남들한테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결과가 꼭 그렇게 나타나는 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학대를 당하면 더 무서운 괴물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학대를 당해서 더 성숙하고 훌륭한 인간으로 탄생하기도 하죠. 근데 왜 그렇게 되냐 하면 학대를 당할 때 그 학대 행위도 중요하지만 어떤 심리를 가지고 그 학대를 당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때까지 형성된 심리가 중요하다는 것이죠. 예를 들면 부모한테 학대를 당하더라도 심리가 건강하고 사랑도 많이 받고 이런 사람들은 내가 이렇게 맞았으니까 나는 앞으로 애들 잘 키워야지, 잘해 줘야지, 이런 쪽으로 된다면 마음이 삐뚤어지거나 뭐 불건전한 사회인식 같은 걸 가진 사람은 부모한테 맞으면 윤석열처럼 되는 거예요.
김어준 : 삐. 삐. 삐.
◉김태형 : (웃음) 나는 이제 국민들을 패야지, 뭐 이렇게 되는 거거든요.
김어준 : 삐.
◉김태형 : 그래서 이런 것에 비추어 보자면 이스라엘의 이제 극소수, 극단적 시오니스트들은 제일 중요한 심각한 문제가 저는 선민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자기들이 신에게 선택받았다는,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선민의식이 있어요. 이 선민의식은 심리학적으로 달리 얘기하면 우월주의입니다, 우리가 잘났다는. 이 우월주의가 있는 사람들이 박해를 당하면 야, 열등한 네놈들한테, 네놈들이 감히 나를 이렇게 대해? 나중에 똑같이 되갚아주겠다. 뭐 아니면 니 자리는 원래 내 거인데, 이런 식의 복수심, 더 우월해지려는 욕망 이런 걸 오히려 부추길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극소수의 시오니스트들이 나치의 박해를 받고 더 무서운 괴물로 탄생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요. 이런 사람들을 다룬 영화도 하나 제가 옛날에 본 기억이 나는데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는 영화에서 부하가 한 명이 그럽니다, 이제. 우리가 백인의 자리를 차지하면 똑같이 되갚아주겠다. 그러자 그 지도자가 이렇게 얘기합니다. 너는 백인처럼 되려고 이거를 하는 거냐. 우리의 목적은 그게 아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이게 이제 바로 제가 말씀드린 두 가지 차이를 보여주는 장면이죠.
김어준 : 자, 강 교수님.
▣강유정 : 일단은 워낙 복잡한 역사에 대해서 제가 전문가 아니기 때문에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현상적으로 말할 수 있는 거는 이 시오니즘이라는 것 자체가 유대인 국가라고 하는 1896년에 쓰여진 책에서 약간 행복의 나라 같은 가상 개념으로 일단 출발을 했던 거거든요. 근데 이게 불을 붙였던 게 바로 드레퓌스 사건이었어요. 그러니까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간첩으로 몰려서 아무도 그를 지지해 주지 않는 상황 속에 극단적인 그 시오니스트들이 결집을 하게 된 거죠. 근데 이 시오니즘이 문제인 게 다른 게 아니라 이를 테면 어떤 신에 의한 자기의 어떤 복권, 이런 것들의 개념에서 출발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 의지의 이름으로 현실과 문제를 초월하려고 하는 정치적인 모임이 바로 이 시오니스트가 돼버렸거든요. 그리고 지금 우리가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의 이런 지금 굉장히 급박한 상황에서 보고 있는 것도 시오니스트들이 상당히 박해의 서사에 있어서 굉장히 유능합니다. 이번에도 인질에 잡혀간 사람 그리고 처음에는 아이들이 참수 당했다, 라는 가짜뉴스까지. 그러니까 복잡한 세계 정치 속에서 단일 민족 국가라는 자신들의 이상향 국가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 완벽한 박해 서사를 만들다 보니 피해자 서사 쪽을 만들어가고 있어서 우리가 자칫 헷갈리는 거죠. 왜냐하면 피해자 서사 중에 인류에 가장 대표적으로 유명한 게 바로 홀로코스트거든요. 그러니까 이 시오니스트들과 이 홀로코스트 피해자들을 자칫하면 헷갈릴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거예요. 근데 이 위험 속에서 오히려 정치적 이득을 지금 얻고 있는 게 극단적인 시오니스트들이고 그들이 벌이고 있는 전쟁에 대한 욕망이 아닌가, 라는 저는 생각이 들어서 좀 그렇게 얘기하고 싶습니다.
김어준 : 자, 마무리해 주십시오.
◍류근 : 아침부터 못 볼 꼴을 보여서 죄송한데 또 이 아침부터 또 추모시를 읽어야 한다는 게 슬프고 분하고 억울해서 욱 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럴 때 써먹을 수 있는 말이 있죠. 작작해라.
김어준 :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웃음)
◉김태형 : (웃음)
https://www.youtube.com/live/Fxx0JPKrhLQ?si=FLiUU1oAl-LJEICp&t=2930